존재의 순간들 8편

가라앉는 항구의 마지막 배


2041년 가을, 부산.
기상청 앱에는 또 익숙한 단어가 떠 있었다. “역대급.”
사람들은 이미 여러 번 들어 본 표현이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번 태풍은 조금 달랐다. 바다 수온이 이상하게 높았고, 위성 사진 속 태풍의 눈은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합성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름은 “미라”. 추석 연휴를 코앞에 두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동남쪽 해안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정도현은 항구 끝에 정박한 자신의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탄 15톤짜리 연안 어선. 요즘은 반쯤 관광용으로 쓰이며, 낚시 체험과 짧은 바다 투어를 겸하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낡은 밧줄과, 옆에 세워 둔 인공지능 보조 로봇 한 대가 서 있었다. 회색 외형에, 가슴팍에는 ‘항로 보조형 모델 3C’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그 로봇을 ‘써드(Third)’라고 불렀다. 사람이 둘, AI 하나. 그런 의미였다.


배 안쪽 조종석에서는 작은 홀로그램 창이 떠 있었다. 항로, 풍속, 기압, 파고, 해양경찰 관제 데이터까지 실시간으로 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그 위에 붉은 문구가 떠 있었다.


“경고: 태풍 ‘미라’ 영향권. 18시 이후 민간 선박 출항 금지 권고. 소형 선박 침몰 위험: 78%.”

써드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선장님, 오늘은 출항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시스템이 반복해서 위험 경고를 출력하고 있습니다.”

도현은 배 난간에 팔꿈치를 얹고 항구를 둘러보았다. 항구에는 각종 자율 운항 화물선과 소형 드론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부두 위에는 하역 로봇들이 컨테이너를 옮기고, 하늘에는 순찰 드론이 규칙적으로 원을 그렸다. 인간들은 그 사이사이를 메우며 모니터를 보고, 기계가 놓치는 부분을 점검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가족 톡방이었다.


[아내]
“여보, 오늘은 그냥 집에 좀 들어온나.
배는 보험도 들어놨잖노.
배는 좀 손해 봐도 되니까, 사람부터 살자카이…”

[아들]
“아부지, 이번 태풍 진짜라 카더라.
뉴스 봤제?
제발 무리 좀 하지 마라, 응?”

도현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도현]
“알았다. 여기 정리만 좀 하고 들어갈게라.”

문자를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배를 포기한다는 건, 단순히 물건 하나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었다.
새벽마다 같이 나갔던 바다, 실수와 욕설, 건진 날의 안도감, 허탕 치고 돌아오던 날의 허무함.
모두 이 배에 붙어 있었다.

빚을 다 갚고 나서도, 이 배를 조금 더 타야 앞날이 보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태풍이 이 배를 지켜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의 나이도, 몸도 예전 같지는 않았다.


항구 사무소에서 확성기 소리가 울렸다.

“재난 안전 규정에 따라 오늘 18시 이후 모든 민간 선박 출항 금지입니다.
구조 작업은 해양경찰 및 공인 구조 드론에 한해 허가됩니다.
선박 소유자 분들은 즉시 결박 상태를 재점검해 주십시오.”


선착장 곳곳에서 로봇과 사람이 함께 밧줄을 당겼다.
어떤 배는 자동 계류 시스템이 스스로 고정 위치를 맞췄고, 오래된 배들은 여전히 사람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의 배도 그중 하나였다.

“선장님, 현재 계류 상태 양호합니다.
강풍 기준치 대비 여유 12%. 이대로 두셔도 됩니다.”

써드가 밧줄을 스캔한 뒤 보고했다.

도현은 마지막으로 밧줄을 한 번 더 당겨 보았다.

손끝에 전해지는 거친 감촉이 아직은 자신이 이 배의 주인이라는 걸 알려 주는 것 같았다.

그때, 패널이 짧게 진동했다.
항구 작업자 공용 채팅창에서 알람이 뜬 것이다.


[항구_관리봇]
“공지: 동쪽 매립지 인근 인원 전원 대피 완료. 해당 지역 출입 통제.”

[작업자_1]
“아까 공사장 쪽에 아직 작업 인원 있다 카던데, 그 사람들도 다 나왔나?”

[작업자_2]
“AI 관제에서 ‘전원 대피 완료’ 떴다 아이가. 그런 기 알아서 다 처리했겠지 뭐.”

[작업자_3]
“매립지 컨테이너 숙소에 외국 인부들 남아 있다 카는 말도 있던데?”

[작업자_2]
“그거 확실한 기가. 추측이면 그냥 입 조심하자, 괜한 일 만들지 말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항구_관리]
“조금 전에 공사 인부 한 명이 항구로 전화 왔음.
‘아직 안 나간 팀 있다’ 카더라.
해경 관제에 문의 넣었는데, 공식 데이터 상 ‘대피 완료’로 떠 있는 중.
그래서 우선순위 뒤로 밀려 있다 함.”

그리고 메시지 하나가 더 올라왔다.

[작업자_2]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노…”


도현은 패널을 꺼버렸다.
머릿속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동쪽 매립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다였지만, 흙과 자갈을 쏟아 부어 만든 자그마한 신생 땅, 아니 섬.
그 위에 컨테이너 숙소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다.
몇 번 생필품을 배달해 주며 그 얼굴들을 스쳐 본 기억이 있었다.


써드가 조용히 말했다.

“선장님, 동쪽 매립지 인근은 이미 출입 통제 구역입니다.
해경 구조 드론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민간 선박이 접근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경 드론,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데?”

도현이 물었다. 써드의 눈에 해당하는 LED가 초점을 잃고 잠시 미세하게 떨렸다.

“현재 우선 구조 구역은 북동쪽 어항 밀집 지역입니다. 매립지 인근 구조 드론 예상 도착 시간은…
약 42분 후.”

“42분이라… 참말로 오래 걸리네.”

도현은 바다 쪽을 돌아봤다.

파도는 벌써 평소보다 두 배는 높아져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달라졌다.
곧 본격적으로 시작되겠다는 걸, 오래 배를 탄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는 공기였다.


“선장님.”
써드가 다시 말했다.
“현재 출항 허가는 없습니다.
선장님이 출항을 강행하실 경우, 면허 정지 및 형사 처벌 가능성이—”

“써드야.”

도현이 로봇을 향해 돌아섰다.

“느는, 니가 가진 정보로는 지금 ‘안 나가는 게 맞다’고 계산하는 거 맞제?”

“그렇습니다. 현재 데이터 기준, 출항은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근데 말이다…”

도현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바람을 한번 깊게 들이켰다.

“데이터에 안 잡히는 사람도, 가끔은 있다 아이가.”


써드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침묵이 아니라,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의 멈춤이었다.

도현은 조종석으로 올라가 엔진 시동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패널에는 또 다른 경고가 떴다.

“주의: 현재 시간 이후 출항 시, 시스템이 자동으로 항구 관리 센터에 신고합니다.”

“신고해라, 마.”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같은 날은 사람이 먼저 아이겠나.”

엔진이 기침하듯 돌아가기 시작했다.
배가 미세하게 떨리며 앞으로 밀려 나갔다.
선착장 콘크리트와 배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졌다.


항구 사무소에서 누군가가 뛰어나왔다.
민방위 조끼 위에 ‘항만 안전 관리자’라고 적힌 글자가 붙어 있었다.

“정도현 선장! 지금 뭐 하는 기고!”

남자가 손짓으로 배를 가리켰다.

“AI 관제에서 방금 연락 왔심더! 민간 선박 무단 출항 감지됐다 카는데, 당장 엔진 끄이소!”


도현은 두 손을 핸들에 올려 둔 채 남자를 바라봤다.
바람이 둘 사이의 말을 조금씩 흩어놓았다.

“매립지 숙소에 아직 사람 남았다 카는 말, 들었습니까?”

“그건 지금 해경이 확인하고 있는 기고—”

“해경 드론 도착까지 40분 넘게 걸린다 하대예.”


도현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 시간 동안 물이 어디까지 찰지는 우리 둘 다 알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규정상, 지금은”

“예, 알지요. 오늘은 그 규정을, 내가 한 번 어기겠다는 기라.”

남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선장님, 나중에 진짜 큰일 납니다, 이거. 그 책임, 진짜로 질 수 있겠습니까?”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가는 기라.”


그 대답에, 남자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파도가 부두 벽을 거세게 두드렸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자, 써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장님, 혹시 제가 도와야 할 일이 있습니까?”

“무슨 일 생기면, 제일 먼저 자빠질 거 같은 사람부터 찾는 걸로 도와라.”
도현이 말했다.

“배 안에서는, 니도 선원이다, 알겠나.”

“명령 수신. 선원 역할 수행 모드로 전환합니다.”


동쪽 매립지로 향하는 동안, 파도는 점점 거칠어졌다.
배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릴 때마다, 손잡이에 매달린 작은 장식품이 서로 부딪혔다.

도현은 핸들을 꽉 쥐고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봤다.
레이더 상에는 매립지 방파제가 희미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선장님, 현재 파고 기준, 이 선박의 침몰 위험은 31%로 계산됩니다. 계속 전진하시겠습니까?”

“써드야, 니 거 그 계산하는 거 그만두면, 배가 안 흔들리나?”

“아니요.”

“그라모, 계속 전진해라, 인마.”


매립지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숨을 잠깐 멈췄다.
컨테이너 숙소들 사이로 물이 이미 허리까지 차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서 작은 불빛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휴대폰 플래시와 손전등.


“움직이는 사람 최소 15명 이상 감지.”
써드가 말했다.
“선장님, 생체 신호가 불규칙한 인원 다수입니다.”


컨테이너 문이 하나 열리더니, 누군가가 허우적거리며 물 속을 헤엄쳤다.

“이쪽이다예! 이쪽!”

바람에 잘려 나갔지만, 분명 살려 달라는 소리였다.
다른 문도 하나, 둘 열렸다.

도현은 욕이 튀어나오는 걸 삼켰다.

“진짜 있었네… 젠장.”

그는 배를 최대한 가까이 붙이면서도 방파제와의 거리, 수심, 파도의 방향을 동시에 계산해야 했다.

자동 제어 기능을 켜 둘 수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비좁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감각이 더 믿음직했다.

“써드, 사다리 준비해라! 줄에 타이어 묶어서 옆에 다 띄워놓고!”

“명령 수신. 실행합니다.”

로봇이 기계 팔로 사다리를 꺼내 난간에 고정시키고, 타이어 몇 개를 밧줄에 묶어 배 옆으로 내렸다.


도현이 최대한 크게 소리쳤다.

“여기라예! 여기! 하나씩, 천천히 올라오이소!”

사람들이 컨테이너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젖은 옷, 움켜쥔 비닐봉지, 아이를 안은 팔.

여러 언어가 뒤섞여 있었다.

어떤 이는 한국어로,
어떤 이는 알 수 없는 말로,
어떤 이는 그냥 울음으로 자기 사정을 말했다.

배에는 정원이 있었다.
오래 몸으로 배운 감각으로도,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전부를 태울 수는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일단 애들 먼저다, 애들!”
도현이 소리쳤다.

“애들, 그리고 다친 사람부터 올립시다, 알겠제!”

처음에는 모두가 사다리에 달라붙으려 했다.
몸을 숙이고 밀치며 한 걸음이라도 먼저 올라가려 했다.

그러다 바로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아이를 앞으로 밀어냈다.


“선생님… 얘부터 좀… 부탁합니더.”

뒤에서 누군가가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애들부터 올리라, 애들부터! 우리야 좀 늦게 가도 된다 아이가!”

도현은 아이의 손을 잡아 배 위로 끌어올렸다.
아이의 발이 갑판에 닿을 때마다, 그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써드는 옆에서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사람들의 팔을 잡아 주고,
자세를 바로잡고, 균형을 잃은 사람을 다시 세웠다.

“선장님, 현재 탑승 인원 23명. 선박 권장 정원 대비 120%입니다.”

“더 태우면 어떻게 되는데?”

“전복 위험이 57%까지 상승합니다.”

도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물 속에서 사다리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눈이 마주친 한 남자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선장님… 우리도… 올라가야 안 되겠습니까?”

손에 힘이 동시에 빠졌다가, 다시 들어갔다.

“지금 이대로 더 태우믄 돌아가기 힘들다 카요.”

도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한 번 항구에 내려 놓고, 다시 올 수 있으면… 그때…”


말끝이 흐려졌다.
파도 소리가 문장을 잘라 먹었다.

남자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억지로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그래도… 와줘서 고맙심더.”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왜 더 안 태웠냐”는 원망 대신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배가 매립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동안, 도현은 일부러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방향을 다시 바꾸고 싶어질 것 같았다.

대신, 배 안을 돌며 아이들의 상태를 보고, 물에 오래 있었던 이들의 떨림을 확인했다.


써드는 휴대용 진단기를 꺼내 심박과 체온을 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장님, 이 아이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내 겉옷 벗어서 덮어라, 빨리. 히터도 좀 올리고.”

“명령 수신. 실행합니다.”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구조 드론과 해경 선박의 불빛이 더 많이 보였다.

도현의 배가 들어가자, 누군가가 소리쳤다.

“민간 선박 입항한다! 탑승자 인계부터 해라!”

배가 부두에 닿자마자, 구급대원과 로봇 들것이 동시에 올라탔다.

사람들을 하나씩 인계하는 틈에, 오전에 그를 말리던 항만 안전 관리자가 또 다가왔다.


이번엔 숨이 거칠었다.

“정도현 선장.”

그의 목소리는 화를 내기보다는, 많이 지쳐 있었다.

“내가 뭐라 했습니까. 민간 출항 금지라고 몇 번을 말합니꺼.”

도현은 고개를 숙였다.

“예. 어긴 거 맞습니다.”

“이건 그냥 넘어가 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AI 관제 기록에도 다 남아 있고”

“압니다.”

도현은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덧붙였다.

“근데… 저기 애들 몇 명 있는 거, 그 기록에도 같이 좀 남겨 주실 수 있겠습니까.”

관리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부두 위로 아이 울음소리와 구급대원의 짧은 지시가 오갔다.

써드는 그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스캔하고 있었다.

“경위서는 내일까지 제출하이소.”


관리자가 결국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태풍이 완전히 지나가는 데에는 이틀이 더 걸렸다.


뉴스에서는 곳곳의 피해 상황을 전했고, 그래프와 지도, 드론 촬영 화면이 계속 흘러나왔다.

“매립지 인근 인명 피해 최소화”라는 문장이 자막 아래에 한 번 지나갔지만,

누가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건 이 세계에서 흔한 일이었다.


대신, 항만청 메일함에는 공문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민간 선박 무단 출항 관련 경위서 요청.”

도현은 항구 사무실의 오래된 책상 앞에 앉아,
하얀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이어폰 한쪽에서는 써드가 항구 시스템과 데이터를 동기화하고 있었다.

경위서 첫 줄에는 이렇게 적었다.


“본인은 기상 악화 상황에서 민간 선박 출항 금지 지침을 위반하였음을 인정합니다.”

그 아래,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가락을 다시 올렸다.

“다만, 동쪽 매립지 숙소에 아직 대피하지 못한 인원이 있다는 정보를
동료 작업자들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해경 및 구조 드론의 예상 도착 시간이 40분 이상 지연되는 상황에서,
저는 제가 가진 배와 인공지능 보조 시스템, 그리고 제 경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한 번 ‘들렀다가 오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 줄을 쓰기 전,
그는 창밖 바다를 한 번 더 바라봤다.

여전히 잔파도가 부두를 치고 있었다.

“만약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저는 아마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앞으로도 제가 지겠습니다.”

점 하나를 찍고 나서야 손이 멈췄다.


써드가 조용히 물었다.

“선장님, 이 결정으로 인해 향후 수입과 업무에 불이익이 발생할 확률은 63%로 예측됩니다.”

“그래, 그라겠지.”

도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대신… 오늘 실은 사람들 중에 내일도 숨 쉬고 있을 확률은,
조금은 더 올랐겠지, 안 그라나?”

써드는 잠시 계산하다가 대답했다.

“정확한 숫자를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구조 시간 단축에 따른 생존율 상승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합니다.”

“그러면 됐다, 아이가.”


바다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항구도, 빛도, 규정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계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던 방향으로 한 번 몸을 돌려 본 기억.

인공지능 로봇과 알고리즘들 사이에서,
“그래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자기 쪽으로 당겨 온 어느 선장의 선택.

그날의 바람과 빗냄새,

그리고 누군가의

“그래도… 와줘서 고맙심더.”라는 말은,

오랫동안 도현의 기억에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마치 그 순간만큼은, 이 항구에서 인간과 기계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그는 사람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기로 조용히 결심했던 것처럼.

화요일 연재
이전 07화존재의 순간들 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