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후에 남은 것들
산에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는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았다. 기차와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마지막엔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절. 거기서도 다시 돌계단과 흙길을 오르면, 노후된 요사채 뒤편에 작은 선방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 방에 들어온 지 십 년째였다.
본명은 거의 쓰지 않았다. 오래전에 받은 법명이 하나 있었지만, 스스로 부를 일도 없어서 점점 희미해졌다.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선방 스님’이나 ‘아직 공부 중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본인도 마음속에서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아직은, 공부 중인 사람.’
그 말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문장이 따라붙었다.
‘언젠가 깨달은 사람이 될 예정이다.’
그 ‘언젠가’를 붙잡으려고 그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좌복 위에 앉았다. 종소리가 어둠을 깨면, 다른 스님들이 각자의 소임을 찾아 나갈 때도 그는 선방에 남거나, 조용히 산길을 올랐다 내려왔다. 앉아서 숨을 세고, 일어섰다가 다시 앉고, 걷다가 멈추고, 또 걷고.
머릿속에는 같은 말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생각을 끊어라.’
‘생각이 일어나는 걸 지켜봐라.’
‘지켜보고 있는 놈은 누구냐.’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놈이 누구냐.’
처음 몇 년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도시를 떠났다는 해방감, 규칙적인 수행의 리듬, 눈 오는 산중의 고요, 계절마다 달라지는 솔향기.
그때 그는 믿고 있었다.
지금의 이 번뇌와 애매함, 서툰 마음들은 언젠가 한순간에 다 터져 나갈 거라고.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뒤집히고, 세상이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는 일이 올 거라고.
그날이 올 때까지는, 지금은 모두 ‘준비’라고.
그래서 매일 좌복에 앉을 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작은 카운터를 올렸다.
준비 2345일째.
준비 3120일째.
숫자는 늘어났지만, 어느 날부터는 이런 생각이 뒤따랐다.
‘언제까지 준비인 거지.’
번뇌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모양만 바꿔 돌아오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돈과 관계, 인정 욕구가 그를 괴롭혔다면, 산에 올라와서는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나는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나는 남들보다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가.’
‘이 길을 포기하고 내려가면, 나는 실패자인가.’
어느 겨울, 노스님 한 분이 눈 오는 날 선방 앞마당을 쓸다가 조용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자신을 심판하고 있네.”
그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딴 계산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말이 화두가 될 수도 있겠는데.’
‘저 말이 내 깨달음의 계기가 되는 건가.’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도 눈은 그냥 흰 눈이었고, 빗자루질 소리는 그저 삭삭거리는 소리였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두 가지 극단을 오갔다.
‘언젠가는 분명 깨달을 것이다.’
‘평생 이렇게 헤매다가 죽을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여전히 그를 옥죄는 문장이었다. 둘 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십 년이 지났는데도 왜 이 모양이냐.’
그럴 때면 그는 좌복 위에서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더 해보자. 끝까지 가보자. 어떻게든 뚫어보자.’
그 ‘끝’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러던 어느 여름, 산 전체가 매미 울음으로 가득 찬 날이었다.
새벽 예불이 끝난 뒤, 그는 선방 뒤 솔밭으로 올라가 앉았다. 습한 공기에 등이 금세 젖었다. 숨이 약간 무겁게 느껴졌다.
평소처럼 앉아, 평소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들이쉬는 숨, 내쉬는 숨.
그 사이에 끼어드는 걸 본다.’
수천 번은 되뇌었을 문장이었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늘 하던 수행.
어느 순간, 아주 익숙한 생각 하나가 지나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특별한 깨달음이 나타나야 한다고 믿는 이 마음 자체가… 번뇌 아닌가.’
이 생각 역시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은, 이어지는 마음이 달랐다.
보통 같았으면 그는 그 생각마저 다시 붙잡았을 것이다.
‘그래, 이 집착도 내려놓아야지.’
‘이 마음마저 버리면 새 문이 열릴 수도 있어.’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속으로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집착이다. …그래서?’
스스로 툭 내뱉은 이 한마디에, 그가 먼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는 지금까지 번뇌가 올라오면 바로 잘라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잡념은 밀어내야 하고, 수행자는 ‘깨끗한 마음’만 남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번뇌를 쫓아내려 하지 않았다. 끌어안으려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는 그대로 두었다.
‘깨달아야 한다는 욕심도 있고, 못 깨달을까 봐 두려움도 있고,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열등감도 있고… 그래, 다 있다. 지금 내 마음이 이렇다.’
그는 그 마음을 바라보았다.
‘이게 옳은지, 수행에 방해가 되는지’ 따지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동안 자신을 조여 오던 것들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를 쥐고 흔들지 못하는 것처럼.
그는 깨달음을 기다리는 마음마저 그대로 올려놓은 채 앉아 있었다.
‘그래, 깨닫고 싶다.
이 욕심도 있다.
이것도 나다.’
이걸 인정하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 오래 엉겨 붙어 있던 매듭이 아주 조금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만한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현란한 환영도, 번개 치듯 내려오는 계시도 없었다.
다만, 하나의 아주 단순한 느낌이 또렷해졌다.
‘아, 이게 다였구나.’
지금까지 자신이 쥐고 걸어왔던 모든 것들이 한 덩어리로 보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산으로 올라오던 밤의 흔들리던 마음,
처음 목탁 소리를 들으며 알 수 없이 눈물이 났던 새벽,
선방 냉기에 발가락이 얼어붙던 겨울,
좌복 위에서 졸음을 참다가 스스로를 혐오하던 밤,
노스님의 짧은 한마디에 속으로 무너져 내리던 오후,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수없이 되뇌던 산책길.
그는 늘 그 순간들을 ‘언젠가 올 진짜 순간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여겨 왔다.
그런데 지금, 마치 누가 뒤에서 살짝 등을 밀어 준 것처럼 관점이 뒤집혔다.
‘그냥, 하나하나가 다 정점이었네.’
이 생각이 떠오르자 숨이 갑자기 깊어졌다. 억지로 길게 들이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폐끝까지 차오르는 느낌.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던 건, 늘 이것뿐이었구나.”
그는 머릿속에 줄줄이 걸려 있던 문장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깨달음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언젠가 다른 내가 될 것이다.’
그 문장들이 결국 하나의 말로 모인다는 걸 느꼈다.
‘지금의 나는 충분하지 않다.’
그 한 줄 때문에 그는 수없이 좌복에 앉고, 경을 읽고, 참선했고, 자신을 다그쳤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도, 사실 이렇게 완전히 있구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까지 포함해, 언제나 하나의 전체로 서 있었다는 감각.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어떤 선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반쯤 감긴 눈 사이로 들어오는 빛, 매미 소리, 땀 밴 옷의 감촉이 동시에 또렷해졌다.
그때까지 그는 깨달음이란 ‘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느끼는 건,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빼지 않고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 그래서였구나.’
이해해야 할 이론은 없었다. 설명해야 할 개념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입으로 설명하려 들수록 본질에서 멀어질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십 년을 한 번에 떠올렸다.
첫해의 불타오르던 열정, 둘째 해의 얄팍한 우쭐함, 셋째 해의 회의, 넷째 해의 도망치고 싶은 마음, 다섯째 해의 무기력, 여섯째 해의 자책, 일곱째 해의 체념과 그 위에 얹힌 희미한 희망.
그 모든 시간 속에서 그는 줄곧 이렇게 느끼며 살았다.
‘아직 아니다.’
그래서 지금, 잠깐 아쉬움이 올라왔다.
‘아까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버렸나.’
하지만 곧, 그 생각마저 스스로를 비웃었다.
‘지금 와서 또 과거를 후회하면, 그게 또 새로운 번뇌겠지.’
그는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막지 않았다. 다만 그 너머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는, 어떤 묵직한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때도, 이미 그 자리였구나.’
어제도, 어제의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스무 살, 서른 살의 자신도, 각자 서 있던 자리에서.
수행을 시작하기 전 회사 책상 앞에서도.
이 길을 처음 떠올리게 한, 버스 뒷자리 창가에 기대 서 있던 그날 저녁에도.
‘그때의 나도, 완전히 존재하고 있었네.’
그는 깨달음이란 긴 시간 위에 찍히는 하나의 별표라고 생각해 왔다.
이제 보니, 그 별표는 시간 위가 아니라 인식 위에 찍히는 표시와 비슷했다.
그는 가만히 자신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말고, 깨닫고 싶어 몸부림치던 모든 순간들도 똑같이 정점이었겠네?’
굳이 대답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몸 어딘가에서 ‘그렇다’는 느낌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을 떴다. 질척한 흙길과 나무 뿌리, 멀리 움직이는 개미 한 마리, 머리 위를 스치는 매미 그림자까지 또렷이 보였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풍경 속에서, 단 하나만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어느 순간도 기다릴 필요가 없겠다.’
평생 붙잡고 있던 ‘언젠가’라는 시간은 더 이상 미래에 있지 않았다. 이미 지나온 모든 날 위에서 조용히 동시에 빛나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평소처럼 공양간에 내려가 설거지를 도왔다. 다른 스님들이 주고받는 농담 사이에서 그는 예전처럼 말수가 적었다. 겉으로 보기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오늘은 공부 잘 됐나?”
누군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짧게 답했다.
“글쎄요. 뭐… 예나 지금이나, 다 비슷하지요.”
반은 농담, 반은 진심이었다.
밤이 되어 선방으로 돌아와 다시 좌복에 앉았을 때, 그는 전에 없던 가벼운 마음으로 자기 상태를 떠올려 보았다.
‘이제 나는 깨달은 사람인가, 아닌가.’
한때는 목숨처럼 절실하던 질문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우스워 보였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겠나.’
그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를 하고, 앉으면 앉고, 걸을 땐 걷고, 웃으면 웃고, 울면 운다.
나중에 누군가가 물을지도 모른다.
“언제 깨달으셨습니까?”
그때 그는 아마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언젠가가 아니고요.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매 순간이 다 정점이더라고요.”
그 말은 설명이라기보다, 그가 본 것을 담담히 나누는 고백에 가까울 것이다.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관찰자가 그 말을 조용히 적어 둘지도 모른다.
‘존재 기록 제10-01호.평생을 구도하던 한 인간이 깨달음 이후에 남긴 한 문장.
모든 순간이 정점이었음을 받아들인 자의 위상을 보관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기록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다음 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일어나 좌복 위에 앉을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 하나뿐이다.
오늘의 좌선이 언젠가 올 깨달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한 하나의 순간이라는 사실.
그는 이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며 눈을 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