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감춘 밤
그 나라의 지도를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면, 사람들은 부츠를 닮았다고 말했다.
그 부츠의 종아리쯤, 겨울마다 관광객이 몰리던 작은 도시의 언덕 위에 한 병원이 있었다. 성당 종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고, 축제철이면 광장에서 불꽃놀이가 보이던 곳.
엘레나는 그 병원의 중환자실 간호사였다.
2020년 3월, 텔레비전에서는 같은 장면만 반복해서 나왔다. 군 트럭이 줄지어 달리는 모습, 꽉 막힌 응급실, 울음을 삼키는 앵커의 얼굴. 숫자는 매일 새로 올라갔다. 확진자 수, 중환자 수, 사망자 수.
“이 나라는 지금, 전시(戰時) 상태입니다.”
총리가 그렇게 말했다.
병원 안에서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처음 환자가 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게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스크와 장비는 부족했고, 지침은 수시로 바뀌었다.
어제까지는 “집에서 쉬라”고 했던 케이스가, 다음 날에는 “곧바로 입원”으로 바뀌었다.
엘레나는 하루에 여러 번 방호복을 갈아입고 중환자실 문을 넘었다.
삑삑거리는 모니터 소리, 인공호흡기 돌아가는 숨소리, 나이 든 의사의 쉰 목소리.
“혈압 떨어진다, 노르에피네프린 올려.”
“산소포화도 70… 아니, 60까지 떨어졌어.”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침대 옆 이름표를 자세히 보지 않게 되었다.
이름은 너무 빨리 바뀌었고, 얼굴은 마스크와 튜브에 가려져 있었다.
대신 그녀는 숫자를 봤다.
산소포화도, 호흡수, 심박수, 소모된 약품 재고, 남아 있는 인공호흡기 개수.
특히 마지막 숫자.
호흡기 개수.
병원 본관에는 성능 좋은 인공호흡기가 12대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로 들어오는 기계는 더뎠고, 환자는 자꾸 늘어났다.
“엘레나.”
어느 날, 중환자실 과장이 그녀를 불렀다.
마스크와 고글 사이로 보이는 눈빛이 조금 들떠 있었다.
“좋은 소식이야. 창고에 있던 구형 모델들 점검 끝났어.
쓰려면 쓸 수 있대. 우리 병원, 호흡기 3대 더 쓸 수 있어.”
엘레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걸 느꼈다.
3대.
환자 3명을 더 붙잡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위가 조용히 조여오는 느낌도 있었다.
‘이제 이 숫자마저, 누군가는 다시 가져가자고 할 거야.’
그 예감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 오후, 병원 회의실에 관리부와 각 과장이 모였다.
중앙 보건부에서 공문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중환자실 장비 재분배 계획.”
극심한 피해를 입은 대도시 병원들에 장비를 우선 지원하기 위해,
각 지역 병원의 여분 장비를 모아서 보내야 한다는 지침이었다.
회의실 화면에 지도가 떴다.
붉은 색 얼룩들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가장 크게 칠해진 곳은, 이 나라의 심장 같은 도시였다.
‘여기보다, 저기가 더 지옥이겠지.’
엘레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뉴스에서는 그 도시의 병원 복도마다 침상이 놓였다 하고,
산소가 부족해서 복도 환자에게는 마스크만 씌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공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각 병원은 전체 인공호흡기 수량의 20%를 중앙 물류창고로 이송 바람.”
12대의 20%.
2.4.
반올림하면 2대였다.
하지만 이 병원에는 이제 막 점검이 끝난 구형 모델 3대가 더 있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15대가 있는 걸로 돼 있는 거지.”
과장이 낮게 말했다.
“그럼 3대 보내야 합니다.”
관리부장이 곧바로 받았다.
엘레나는 말없이 문서의 숫자를 봤다.
“현재 가동 가능 인공호흡기: 15대.”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진짜로 믿을 수 있는 건 12대다.’
창고에서 막 꺼낸 3대는, 오래되었고 불안했다.
전자식이 아니라 수동 조절 장치가 붙은 구형 모델.
그래도 없느니만 못한 건 아니라, 모두들 가능하면 쓰자고 했다.
하지만 엘레나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숨 하나를 두고 버티는 싸움에서는,
“대충 쓸 수 있다”와 “정말 믿고 쓸 수 있다” 사이의 차이가
곧 생과 사를 나눈다는 것을.
“구형 3대는… 안 보내면 안 됩니까?”
엘레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눈길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우리도 지금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여기서 3대를 빼면, …우리는 어떻게 하죠?”
관리부장이 안경 너머로 그녀를 바라봤다.
“간호사님, 다른 병원들도 지금 똑같은 말을 할 겁니다.
어디는 하루에 몇십 명씩 죽어나간다는데…”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엘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모두가 자기 쪽도 지옥이라고 말하고 있을 거야.’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흩어졌을 때,
엘레나는 혼자 창고로 내려갔다.
낡은 호흡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점검 끝났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프레임 군데군데 긁힌 자국과 빛 바랜 플라스틱이 세월을 숨기지 못했다.
엘레나는 장비 하나에 손을 얹었다.
금속이 차갑게 느껴졌다.
‘너희를 보내야 하는 걸까.’
그녀는 머릿속에서 두 가지 장면을 그려 봤다.
이 병원에서 호흡기 3대를 내보내는 경우.
그리고, 보내지 않는 경우.
보내면,
지도에서 가장 붉게 칠해진 도시 어딘가에서 누군가 숨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곧 침대가 가득 차고,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올 거라는 것 역시 분명했다.
누구에게 호흡기를 물릴 것인지.
누구에게는 마스크만 씌워 줄 것인지.
보내지 않으면, 반대가 된다.
국가 통계에서 보면,
어쩌면 몇 명의 추가 희생자가 저 도시 쪽으로 더 치우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 이 병원 안에서만큼은,
조금 더 오래 “숨 쉴 자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차이가 얼마나 될까.
3대.
밤 근무 한 번에, 삼십 분마다 돌아보는 침대 세 개.
엘레나는 그 숫자를,
그냥 숫자로만 보려 했다.
하지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몇 년째 이 병원에 다니던 노부부.
아이 때 시장에서 사과를 깎아 주던 과일가게 주인아줌마.
작년에 심근경색으로 한 번 쓰러졌다가 간신히 살아난 은퇴한 교사.
그들은 이미 여러 번 이 병원의 복도를 오갔다.
감사 인사를 하며 과자를 건네던 손,
“다음에 또 봅시다.”라고 웃고 돌아가던 뒷모습.
만약 그들이 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자신의 입으로 이런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기계가 없습니다.”
거기까지 상상하고 나자,
마음속에서 또 하나의 문장이 따라붙었다.
“우리가 쓰던 기계는, 다른 도시로 갔습니다.”
엘레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마스크 안이 뜨겁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누구의 숨을 어디로 밀어 넣을지 정하는 건가.’
공문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그곳에는 “재분배”, “효율”, “우선순위” 같은 단어만 적혀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무게는,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결국 어느 쪽 사람의 폐 속에 공기가 들어갈지,
그 경계는 누군가의 손끝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엘레나는 오래된 호흡기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점검표에 찍힌 도장은 선명했다.
“사용 가능.”
그녀는 그 종이를 떼어냈다.
그리고 대신, 백지 한 장을 붙였다.
펜을 들어 첫 글자를 쓸 때, 손이 떨렸다.
“고장. 사용 불가. 재수리 필요.”
글자가 종이에 박힐 때마다,
가슴속으로 어떤 문장이 따라 찍히는 것 같았다.
‘이건 거짓말이다.’
엘레나는 그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또렷하게 인정했다.
‘그래. 거짓말이다.
…그래도, 지금 나는 이 거짓말 쪽을 택하겠다.’
며칠 뒤, 중앙 물류 트럭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공문에 적힌 수량대로 호흡기 두 대가 실려 나갔다.
창고 구석에서,
“고장” 딱지가 붙은 구형 호흡기 세 대는
그대로 남았다.
그날 밤,
중환자실에는 새로운 환자 세 명이 거의 동시에 올라왔다.
둘은 이미 호흡기가 필요했고,
하나는 빠르게 최악의 상황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과장이 이마를 짚으며 낮게 욕을 내뱉었다.
“이제 진짜 끝이야. 더는 뺄 기계가 없어.”
엘레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창고에, 공식 기록상 ‘수리 중’인 애들이 몇 대 있습니다.”
과장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쓸 수 있어?”
“장담은 못 합니다.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겠죠.”
잠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지금 상황에, 장담 따위가 어디 있어.”
과장은 마스크 너머로 씁쓸하게 웃었다.
“살 수 있는 애들이면, 어떻게든 붙잡아야지.
저 아래 도시 놈들도, 지금 같은 소리 하고 있겠지.”
그날 새벽,
오래된 호흡기 세 대가 다시 켜졌다.
삑, 삑, 삑
새 모델들보다 조금 더 둔탁한 소리.
조절 노브는 손맛이 더 필요했고,
경고등은 가끔 이유 없이 깜빡였다.
엘레나는 모니터와 함께,그 낡은 기계들의 숨소리를 같이 들었다.
‘버텨줘. 제발.’
이건 환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기계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몇 주 후,
이 병원은 상부에 보고서를 올렸다.
“중환자실 사망률: 전국 평균보다 낮음.”
뉴스에서는 여전히 나라 전체의 참상을 이야기했다.
“인구 대비 사망률 세계 최악.”
“경제 활동 마비.”
“국가 재정 적자 사상 최대.”
그러나 이 작은 도시의 곡선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덜 가파르게 올라가고
조금 더 일찍 꺾였다.
나중에 누군가 통계를 분석하며 말했다.
“여기는 이상하게도 사망률이 조금 낮네요.
처음부터 병상 확보를 잘한 건가요?”
엘레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조용히 손톱을 꼬며 시선을 돌렸다.
‘아니요.그냥, 내가 창고에서 거짓말을 한 적이 있을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싶다가, 입을 다물었다.
밤에 혼자 중환자실 라인을 정리할 때,
TV에서는 여전히 큰 도시의
폐쇄된 장례식장 뉴스가 흘러나왔다.
마스크 너머로 마지막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사람들,
숫자로만 집계되는 이름 없는 죽음들.
엘레나는 가끔 생각했다.
‘내가 그 호흡기들을 보냈다면, 저 화면 속 숫자 중 몇 개는 다르게 적혔을까.’
정확한 답을 알 방법은 없었다.
그녀는 전국 통계를 보면서도, 그 수치들 속에
자신의 거짓말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계산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병원의 복도에서,
엘레나가 직접 이름을 불러왔던 몇 사람은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것.
퇴원하며 손을 흔들던 노부부.
산소 마스크를 벗고 “고마워.”라고 말하던 과일가게 주인.
“다시 성당에 갈 수 있겠죠?” 하고 물으며 웃던 노신사.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엘레나는 창고에서 펜을 들고 서 있던
자기 모습을 함께 떠올렸다.
‘그날, 나는 도대체 뭘 선택한 걸까.’
국가를 배신한 걸까,
내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킨 걸까.
고민에 빠져있던 엘레나를 지켜보던 과장이 담배를 입에물며 말했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엘레나를 향한 조언인지도 모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라.
모두 각자 보이는 사람부터 붙들려고 한 것뿐이야.”
그 말이 위로가 되기도 했고,
완전히 위로가 되지는 않기도 했다.
엘레나는 안다.
누군가는 그날 규칙을 지키는 쪽을 택했고,
누군가는 규칙을 비트는 쪽을 택했다는 것을.
자신은 분명히,
두 번째 쪽에 서 있었다는 것을.
그 선택이 나라 전체로 보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밤마다 한 번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때마다,
그녀는 같은 문장을 떠올렸다.
‘그래도, 그날 나는 내가 직접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 문장은 변명이라기보다,
자신이 그 선택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쥐고 있어야만 하는 말에 가까웠다.
몇 년 뒤,
코로나는 더 이상 매일 뉴스의 첫머리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질병과 새로운 사건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차지했다.
하지만 엘레나에게는 2020년 3월의 창고 냄새와
차가운 금속 표면의 감촉,
“고장”이라는 글자를 쓰던 손끝의 떨림이
여전히 선명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물을지도 모른다.
“그때, 당신은 괜찮았나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나요?”
엘레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창고에서 펜을 들고 서 있던 그 순간이랑,
인공호흡기 옆에서 환자 손을 잡고 있던 그 순간들만큼은…
그때마다 이상하게,
‘아, 지금이 내가 이순간을 나로 존재하는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 말을 조용히 적어 둘지도 모른다.
“존재 기록 제11-01호.
세계적인 전염병 속, 한 지방 병원 간호사가
국가적 지침을 비트며 선택한 거짓말.
국가 전체의 피해 곡선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흔들림을 남겼을지 몰라도,
그녀의 손이 닿는 작은 세계만큼은
조금 덜 흔들리게 만든 위상을 보관한다.”
그러나 엘레나는
그런 기록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다른 계절의 다른 환자 옆에서
다시 한 번 청진기를 들고 서 있을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정점이 찾아온다 해도,
그녀는 아마 그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누군가의 숨을 붙잡기 위해
조용히 손을 뻗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