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분류]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디지털 방'을 붙이는 새로운 사관들의 시대, 방송작가가 설 자리는 어디?
역사적으로 '미디어'의 어원을 찾아가 보면 '중간'이라는 뜻이 나옵니다. 서로 닿을 수 없는 두 존재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라는 의미죠. 생각해 볼까요? 옛날 구중궁궐 깊숙이 있는 왕의 목소리가 어떻게 저잣거리의 백성에게 닿을 수 있었을까요? 그 '중간'에서 다리가 되어준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벽에 붙여 소식을 알리던 '방'이 그랬고, 유럽 광장에서 목청 높여 외치던 '전령'이 바로 그 시대의 미디어였던 셈입니다.
흥미로운 건, 오랫동안 방송국이 독점해 온 이 '중간자'의 권력이 깨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거대 방송국이라는 확성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가요? 구청도, 시청도, 정부 부처도 남의 입을 빌리지 않고 직접 '미디어'가 되어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국 작가들이 공공기관 유튜브로 대거 이동하는 흐름은 바로 이 '미디어 권력의 대이동'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요즘 구인 사이트를 한번 훑어보면 '00시청', '00부처' 작가 공고가 많이 보이죠? 바야흐로 중앙집권적 방송국 시대가 저물고, 전국 팔도 모든 지자체가 저마다의 '전령'을 거느린 '초 다채널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송작가의 입장에서 전쟁터가 된 기존 일터에서 벗어날 새로운 일터가 생긴 셈이기도 합니다.
시청률이라는 '야생' vs 공공성이라는 '성벽'
방송국은 자본주의의 최전선입니다. 시청률이 곧 생존이죠. 반면 공공기관은 '책무’의 영역입니다. 로마 시대 때 황제가 빵과 서커스를 제공했듯, 현대 정부는 '정책'과 '예산'을 국민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작가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안정성'이 발생합니다. 방송국 프로그램은 재미없으면 폐지되지만, 시청의 행정은 멈출 수 없거든요. 예산은 매년 집행되어야 하고, 쏟아지는 정책을 누군가는 설명해야 합니다. 즉, '현대판 사관'으로서 작가의 수요는 경기를 타지 않는 '상수'가 된 셈입니다.
'충주맨'이 던진 화두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주 중요한 본질이 있습니다. 바로 '목적의식’입니다. 많은 분들이 '충주맨'을 보며 "와, 공무원이 저렇게 웃겨?"라고 감탄하지만, 저는 그 내면에 숨겨진 '트로이의 목마' 전략을 봅니다. 트로이 전쟁 때 목마 안에 병사들을 숨겨 성 안으로 들여보냈듯, 충주맨은 'B급 유머'라는 목마 안에 '충주시 홍보'라는 본질을 아주 교묘하게 숨겨서, 때로는 대놓고 보여줍니다.
공공기관 유튜브의 딜레마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국민들은 공무원의 춤사위 자체를 보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들의 무의식 속 질문은 항상 실용적입니다.
"그래서, 내 삶이 어떻게 나아지는데? 내가 받을 돈은 얼마고, 신청 버튼은 어디 있는데?"
이 실용적 욕구를 건드리지 못하고 겉멋 든 유머만 남발한다? 그건 세금 낭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실패한 콘텐츠입니다.
닭가슴살을 미슐랭 요리로! ‘번역'의 기술
결국 공공기관 작가의 역할은 ‘번역가’이자, ‘셰프’죠. '보도자료'라는 원재료를 볼까요? 행정 용어로 점철된, 세상에서 가장 퍽퍽한 닭가슴살 같은 글입니다. 이걸 그대로 내놓으면 아무도 씹지 않습니다.
여기서 작가의 구성 능력이 빛을 발해야 합니다.
1단계: 딱딱한 '관료의 언어'를 말랑말랑한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고,
2단계: 거기에 최신 밈이라는 소스를 뿌리고,
3단계: B급 감성이라는 바삭한 튀김옷을 입혀내는 거죠.
(단계는 아이템에 따라 1단계에서 끝날 수도 2단계에서 끝날 수도 있음)
시청자가 "ㅋㅋㅋ" 하고 웃다가, 영상이 끝날 때쯤 자연스럽게 초록창을 켜고 '고향사랑기부제'나 '청년월세지원'을 검색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넛지' 효과이자, 우리 작가들이 달성해야 할 궁극의 미션입니다.
단순 구성작가가 아닌, 소셜 커뮤니케이터!
구성작가들의 새로운 일자리(=공공기관 뉴미디어)는 방송국 부장님의 오케이 사인을 기다리는 대신, 국민들이 필요한 정책을 한 사람이라도 더 클릭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단순한 영상 제작을 넘어, 국가와 시민 사이의 '단절된 소통'을 잇는 가교 역할이죠.
"어떻게 하면 이 좋은 혜택을 필요한 국민이 놓치지 않게 할까?"
이 고민을 안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여러분은 단순한 '구성 작가'가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소셜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이죠.
클릭 한 번으로 누군가의 오늘을 바꾸는 힘
결국 미디어의 본질은 '연결'에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는 정치와 수다, 그리고 장터가 뒤섞인 곳이었습니다. 지금의 유튜브가 바로 그 '디지털 아고라'인 셈이죠. 과거의 '방'이 일방적인 통보였다면, 지금의 공공 콘텐츠는 광장에서 시민들과 눈을 맞추며 설득하는 '대화'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바로 구성을 하는 여러분입니다.
펜대 하나로 세상을 조금 더 이롭게 만드는 일, 이것만큼 매력적인 지적 노동도 없는 거 같단 생각을 끝으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