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킹가위 Jun 13. 2024

바람이 분다

이별을 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의 이별이나 그로 인한 슬픔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세상은 언제나처럼 잘만 굴러간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이런 서글픔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에 의하면 노래에서 감정을 과도하게 노출하는 것은 심리적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노래는 감정의 노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절제된 감정으로 나의 정적인 취향을 만족시켜 준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중에서


원래 노래방에서는 1절만 하는 게 매너다.


 '불어오다'와는 일반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주어로 선택해 말의 맛을 살렸다. 실제 풍경이 텅 비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이 텅 비어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공허함으로 인한 심경의 변화로 머리를 자르고 결국 눈물을 흘리지만 마치 남의 눈물을 지켜보는 듯하다.


눈물로 인해 하늘이 젖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공교롭게 찬 빗방울도 때마침 떨어진다. 나를 위로 해주나? 공감해 주나? 싶기도 하지만 텅 빈 내면의 나와 달리 빗방울들은 무리를 지어 내리기에 내 마음과는 멀게만 느껴진다. 비는 곧 그치고 비를 비롯한 어떤 것도 내 마음을 대변하지 못한다.


이렇게 세상의 규칙은 나의 감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정해진 대로 흘러갈 뿐이다. 달라진 건 텅 빈 가슴을 안은 채 머리가 짧아진 나뿐이며 사랑을 꿈꾸던 나의 바람(望)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흩어져 사라져만 간다.


재미있는 특징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눈물을 쏟는 것도, 하늘이 젖는 것도, 비가 오는 것도, 시간이 흐르는 것도, 사라져 가는 무언가도 모두 현재형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재형으로 노래하다 보니 보다 직접적으로 화자의 정서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별이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임을 실감하게 된다.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처럼 음악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