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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담 Jul 21. 2022

우리 집 반려식물들

식물 하는 시간 1

식물을 집안에 들여놓기 시작한 건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18년 전부터다.


결혼 후 전셋집을 전전하다 지금 사는 ‘우리 집’이 생겼을 때 가장 마음에 든 건 화단이었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인데도 입주할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화단이 있었다.(시간이 지나서 보니 이 공간을 화단으로 쓰는 집은 많지 않은 듯하다)


소소한 이삿짐 정리가 끝났을 때, 본격적인 화단 꾸미기에 들어갔다. 


화단은 거실과 안방 두 군데. 처음엔 작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여놓을 식물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니 꽤 넓은 공간임을 알게 됐다. 


그동안 몇 개의 화분만 키워본 내게 정원 꾸미는 일은, 화초의 종류를 선택하기부터 어려움이었다. 화원엔 온통 식구 삼고 싶은 화초들 천지였다.


“하나둘씩 사다 나르는 거 생각보다 쉽지 않아. 내가 도와줄게.”


농장을 하는 친구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공간이 작은 거 같아도 정원은 나름 구성이 필요해. 큰 나무를 이곳에 배치하고 작은 화초들은 가운데 배치하고…….”


친구는 농장을 경영하는 전문가다운 포스로 말했고, 곧 농장에서 쓰는 트럭에 화초들을 사 실어 왔다. 

그렇게 우리 집 첫 정원이 태어났다.


그때 식구 삼았던 화초들, 아라우카리아, 안시리움, 율마……. 이후 18년 동안 살아남은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 죽음으로 내몰았다. 처음 만난 화초들의 특성을 모른 것이 원인이었다. 


제법 예쁜 정원이 만들어졌을 때, 첫 번째 위기가 왔다. 진드기의 습격이었다.


진드기는 키 큰 화초(키가 천정 가까이 닿았는데, 위쪽에만 연약한 연둣빛 잎이 동그랗게 모여있는 형태로 조형된 화초였다. 이름은 잊어버렸다)에서 시작해 다른 화초들로 퍼졌다. 진드기는 점령군처럼 전 정원의 화초들에 달라붙었다. 화초의 잎들은 빈틈없이 달라붙은 진드기에 진액이 빨려 시들어갔다. 잎으로 광합성을 하지 못한 나무는 시들어갔다.


다시 친구에게 SOS. 


“어떡해?”
 “약을 치면 돼. 진드기 죽이는 약.”


친구는 농약통을 들고 오더니 커다란 비닐로 거실 입구를 막고 ‘약’을 쳤다. 


진드기는 그렇게 퇴치됐다. 그런데, 이 일로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물고기의 떼죽음이었다. 그때 집에는 정원의 수반과 거실의 어항이 있었는데, 정원 수반의 금붕어가 자꾸 죽어 나갔다(여러 번 닦았음에도). 그뿐 아니라, 방 안에 있던 어항의 물고기들도 끊임없이 죽어 나갔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얼마 전 딸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나는 우리 집 어항을 ‘사구(死球?)’인가 뭔가라고 불렀어. 일기장에 그렇게 썼던 게 생각나. 물고기가 죽는 어항이라는 의미로. 그때 한참 한자를 배울 때였거든.”


 웃을 수만은 없는 일. 비말로 날아온 약간의 농약만으로도 여린 생명은 죽을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배운 계기가 됐다.


식물의 강인함과 동물의 연약함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지구 위 인간이 최종 승리자인 거 같지만, 아니다. 지구 위 가장 강한 생명체는 식물이다.”


지구 위의 생명체들이 갖는 다양한 힘들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 만든 화학제품이 갖는 위력과 무자비함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의 필요에 따라 진드기 생명은 죽이고 식물을 살리는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사진 ; 2008년 3월 우리 집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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