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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담 Dec 28. 2023

공부 재미에 '풍덩!'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논어 '學而第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제 때에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지방에서 스스로 오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나지 않으니 또한 군자 답지 않은가!”


배움의 즐거움이 친구의 사귐보다 먼저 등장한다. 그것도 공자의 모든 말씀 중에 제일 먼저! 


요즘 <논어>의 이 글귀처럼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지금껏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즐겨 공부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여겼는데, 지금 느끼는 '공부 재미'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해 여름, 대학원에 들어갔다. 지난 12일 소논문을 제출하는 것으로 이번 학기를 마쳤으니 3학기가 끝난 셈이다. 


갑자년(甲子年)으로 시작되는 60갑자 한 바퀴 회전을 코 앞에 두고, 멈춘 정규 과정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결심에는 갈등이 적지 않았다.


'지금껏 늘 책을 읽고 공부를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굳이!' 하는 생각. 

'이제 와 대학원 공부?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하는 습관이 된 자본주의적 효용 계산.

'그다지 건강한 체질도 아니면서 할 수 있겠어?' 하는 핑곗거리 찾기.

'비용은? 매달 들어오는 인세는 쥐꼬리보다 못하는데! 게다가 남편의 정년퇴직이 코 앞에 와 있잖아!!' 하는 실질적인 갈등.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사 소설을 쓰면서 느낀 공부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일에는 자료 조사와 모은 자료 섭렵, 이를 토대로 내 시각을 갖는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그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 마지막, '내 견해 갖기'다. 


나의 첫 출간 소설 <소서노>를 쓸 때가 생각난다. 도서관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료들을 찾아 모으고, 나름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들을 받아들이고, 사료와 연구 결과들에서도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을 최대한 타당하게 상상하여 인물의 성격과 줄거리를 만든 다음, 소설 쓰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98년 1권, 99년 2권을 더해 통합 <소서노>1.2(당시 책 제목은 '고구려를 세운 여인, 소서노)를 낸 뒤 조금씩 소서노에 대한 다른 해석들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낸 뒤(당시는 여건이 되지 않아 답사하지 못했다)  두 번에 걸쳐 답사한 고구려 첫 도읍지 '오녀산성'의 모습은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의구심은 고구려의 최초 건국지가 현재 중국 환인의 '오녀산성'이 아니라는 학계의 연구 결과가 덧붙여지면서 커졌다. 역사의 진실에 따라 <소서노> 소설의 위치가 재조정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핵심은 '진실(사실)'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역사 속 소서노가 고주몽과 더불어 세운 고구려의 첫 도읍지는 어디인가, 이것이 문제였다. 


대학원에 들어가 역사학(구체적으로는 한국역사韓國歷史)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이 의문을 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1차 원사료를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실을 추론해 가는 과정을 공부하는 일은 어렵지만 재미있었다. 첫 학기 소논문 제목은 <고구려 건국지 비정 과정 연구>였다. 이 논문에서는 고구려의 첫 도읍지가 '오녀산성'이라는 소위 '학계 정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를 알아보는 연구였다. 이 연구를 통해 이 정설은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를 말살하는 데 앞장선 대표적인 일본인 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고, 이를 우리 역사학계의 거두라 평가받는 이병도가 비판 없이 따르면서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 결과는 실로 어이없었다. 우리 역사학계는 어떤 연구도 없이 그저 일제 우리 역사 말살자인 시라토리 쿠라키지의 설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니!


알고 보니 이런 현실은 이 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역사,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정론'이라는 타이틀로 만연하고 있었다. 


점차 공부 목표가 뚜렷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일천하다는 현실 자각과 그 자각이 주는 부담감에 짓눌리기도 했지만 공부 재미는 이 모든 부담감을 이겨내게 만들었다. 


매일, 도서관 여는 시간에 맞춰 나가 기다리는 시간은 육체적으로 힘드나 즐거운 설렘이다. 도서관에 자리 잡고 앉아 시작하는 1차 원사료를 읽기도 더없이 재미있다.  석사논문을 위한 구상과 자료 읽기 또한 즐거움이다. 


학문은, 나이를 잊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사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소서노 관련 원문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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