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선정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투 유유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입니다.
한자로 라고 쓰는데 이름 지을 때 시경에 나오는 시구절에 있는 사슴 울음소리를 차용하였다고 합니다
투 유유는 1930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베이징대 의과대학 약학과로 진학하여 식물학, 본초학(本草學), 식물분류학을 공부하였습니다 .
졸업 후 중의과학원으로 들어가 연구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 후반 베트남전쟁이 치열하던 당시 말라리아가 발생해 베트남은 물론 중국에까지 폭증함에 따라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보다 말라리아로 숨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지게 되자 이의 퇴치가 급선무가 되었습니다. 더욱 기존의 퀴닌(quinine)을 투여하는 방식으로는 치유되지 않는 신종 말라리아로 밝혀져 치료 약 개발이 시급했습니다.
그때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기존의 시스템이 붕괴되어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쫓겨나 청소부 등의 잡부로 일하게 되는 등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처지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추산환자 4천만명이라는 사태에 직면한 마오쩌둥은 1967년 긴급회의를 열어 말라리아치료제 개발을 군사작전으로 수립하여 추진하도록 하였습니다.
523프로젝트로 이름 붙여진 이 신약개발팀에 투 유유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다수는 다양한 화합물로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투 유유만 중국 전통의학서에서 실마리를 찾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640개 처방을 수집하고 수천종의 식물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다가 1971년 동진(東晉)때 갈홍(葛洪)이란 사람이 쓴 주후비급방이란 책에 나오는 ‘개똥쑥’에 착안, 190번의 실험을 거쳐 유효한 성분을 얻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개똥쑥(학명: Artemisia annua) 을 고열로 추출하던 것을 저온추출로 바꾸어 시도한 것이 성공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것을 직접 자기에게 투여하여 시험을 하였습니다. 결국 말라리아 감염율은 40%이하로 내려가고 , 사망률은 50%이하로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개발자인 투 유유는 숨긴 채 군사기밀로 취급해오다 마오가 돌아간 1976년 학술지에 개발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중국당국은 이 성과를 10대 과학기술성과라고 하면서도 투 유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개발은 개인이 아니라 인민 전체의 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이 지난 2011년 미국의 노벨의학상이라는 래스커상을 수상하면서 투 유유가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 엄격하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첫번째 수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명의 중국인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출생이나 혈통이 중국인이지 교육과 연구는 미국에서 그리고 국적도 미국 국적을 취득하여 중국 자체에서도 자기나라사람이라고 내놓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던 중 투 유유는 중국 태생으로 교육도 중국에서 받은 데다가 전통의학서에 착안하여 치료제를 개발하여 중국 전통과학에 대한 중국의 자존심을 높여주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이 투 유유의 노벨상 수상을 환호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투 유유는 중국밖에서 공부하거나 연구하지도 않았고, 의학박사학위를 받지도 않았으며 중국과학원 최고과학자 칭호인 원사도 받지 않은 ‘3무’과학자로 이름이 높습니다.
그러기에 수백만명의 목숨을 구한 투 유유를 영국 BBC방송은 마리 퀴리, 아인슈타인, 앨런 튜링과 함께 20세기 위대한 과학자로 선정한 것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