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듣던 대로 잘 만든 영화였고, 듣던 대로 돈을 주고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이었다. 특히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긴장을 유지하는 플롯이 정말 일품이었다. 게다가 군사반란을 일으킨 그들이 권력자가 되어 얼마나 떵떵거리며 사는 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내 울분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신은 없는 게 분명하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저 놈이 천수를 누리며 살다 늙어 죽을 수가 있을까? 그 마지막 장면은 내게 영화 암살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 내부에서 일본의 밀정 노릇을 했던 이정재는 해방이 된 후에도 경찰 간부가 되어 잘 먹고 잘 산다. 그러다 끝끝내 자신을 찾아온 독립군이 권총을 겨누며 왜 친일을 했냐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 줄 몰랐으니까! 알았다면 그랬겠나?"
글쎄. 오히려 내가 되묻고 싶다. 독립이 된 지 78년이 넘은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알고 있었다면 정말 독립운동을 했을까? 친일을 한 자들과, 매국을 한 자들과, 군사반란을 일으킨 자들과, 자국민을 학살한 자들과, 독재를 한 자들과 그 후손들이 사회 상류층을 형성하며 잘 먹고 잘 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알았다면 정말 독립운동을 했을까?
같은 영화에서 조승우가 연기한 의열단 단장이자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던 김원봉은 해방 이후 악명 높았던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빨갱이라는 욕을 먹으며 고문당하다 북한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노덕술은 해방 이후에도 각종 경찰 요직들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한다. 이런 미래를 모두 알고 있었다면, 과연 친일을 하지 않았을까? 군사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