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행복한 내 가정을 갖는 게 꿈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 정도로 내 성향이 확실한 사람이다. 그런데 전 여자친구와 사귀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내게 말했다. "사실 나는 비혼주의자야." 나는 사귀기 전 알지 못했던 그녀의 성향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렇다면, 나와는 가벼운 연애만 하겠다는 걸까? 십 년 이십 년 계속 연애만 하겠다는 걸까? 그게 가능할까? 끝이 정해진 연애를 하는 게 맞는 걸까? 난 한동안 치열하고 힘겹게 고민한 끝에 그런 그녀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나와 다른 목표를 가지고 다른 길을 가지만, 지금은 함께 걷는 이 길을 존중하기로 했다.
수개월 뒤 술에 잔뜩 취한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나는 비혼주의자인데, 너라면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불같이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녀를 존중했지만, 그녀는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손해보지 않는 베팅을 했던 거였다. 그냥 비혼주의라고 선언한 후에 살다가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나타나면 네가 내 비혼주의를 깼다고 말하면 된다. 그런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냥 비혼주의로 살면 된다. 자신이 비혼주의라고 선언해서 상처받고 고민하고 슬퍼했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었다. 비혼주의를 방패막이로 삼은 채 그저 시혜하듯 상대방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꽤 오래 만났지만 결국 헤어졌다. 그녀의 생각과, 그녀의 비혼주의와, 그녀의 변심이 영향이 없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릴 수 없었으니까. 결국 끝끝내 나는 이별을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