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순 - 양귀자
물론이다. 퇴사 후에도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매우‘, ’아주‘ 라는 수식어는 붙이지는 못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뭔가 계속해서 마음이 허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퇴사를 후회하는건 절.대. 아니다.)
분명히 그 지옥 같던 하루하루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의 스트레스는 없다.
시간도 많고, 마음도 편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회사 다닐때보다 훨씬 더 밝아지고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원래 나는 무지 밝은 사람이었다.)
퇴사를 한 덕분에 모두의 부러움도 사는 중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다.
너무 여유로워서 오히려 불안하고 지겹다고 해야하나? 스스로도 참 어이가 없다.
바쁠때는 그렇게 여유롭고 싶어하더니, 막상 여유로워지니까 지겹다니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 마음을 해결해보자는 심정으로 이 허~한 마음에 대한 원인파악을 시작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퇴사 후 가장 큰 변화는 ‘돈’이다.
퇴사 전에는 돈이 내 인생에 제일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고 그렇게 떵떵거렸건만 실제로 반토막난 월급을 받아보니 참 간사하게도 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근 2년간은 월급에 성과급까지 계속해서 큰 돈이 꽂혔을뿐만 아니라 돈 쓸 시간도 없어서 돈 걱정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수입은 줄어들었는데 시간은 많아지니 지출이 왕창 늘어난다. 시간이 많으니까 놀고는 싶고, 근데 놀려면 또 돈이 필요하고… 무한걱정굴레다.
그리고 매일 스스로 ‘생산적인 활동‘ 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결국 이것도 내가 만족스러울만큼 돈을 벌고 있지 않기 때문에 드는 생각인 것 같다.
물론 불안감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나는 일자리를 구해놓고 퇴사를 했다.
하지만 백수여서 불안한게 아닌,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안함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왔다.
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매일 8시 출근해서 4시 퇴근하는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안감, 찝찝함이라는 감정이 존재할까?
왜냐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궁극적으로 내가 쌓고자하는 커리어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없어져버렸다'라고 표현하는게 맞을 것 같다. 직접 겪어보고 느낀 점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일을 선택했을때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고, 실제로 잘 맞다면 본업으로 삼을 생각으로 과감한 도전을 했다.
물론 일은 정말 재밌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워라벨도 최상이다. 퇴사하기 전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실제 현업을 겪어보니 이 업계는 본업이 아닌 사이드잡일때가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 업계를 직접 겪어본 덕분에 깨닫게 된 사실이니 어떻게 보면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뭘 본업으로 삼고 싶은지는 차차 고민해볼 생각이다.
퇴사를 계기로,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팔자는 못 되는구나 싶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하고, 집에서 하루종일 있는건 고역이다.
바쁜 일상을 벗어난 덕분에 한 발자국 물러서서 나에 대해 잘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다.
모순<양귀자> 296P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결국 나는 그 순간 나에게 없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는 겪어보지 못한 결핍을 경험한다. 그럼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또 새로운 걸 시도한다. 그게 인생을 즐기는 나의 방식이다.
나는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실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떤 새로운 세상이 앞으로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흥미로울 뿐이다.
모든 건 직접 해봐야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