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 쌤이 아주 오래간만에 영어 해석을 도와달라고 에스오에스를 쳤다. 진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알아내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글이었다. 철학에 관련된 글은 모국어로 읽어도 사실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런데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읽으려니 더 힘든 건 당연하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충분히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단어와 어려운 문법 구조를 사용하여 과학적 진실에 관한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기야, 철학자가 8살 꼬마 아이 말투를 사용해서 철학에 대해 논의하면 그건 코미디지 학문이 아닐 것이다.
상황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한국말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매우 잘하는 미국인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문제점은 상대가 누구이던지 상관없이 항상 한국말을 할 때 극 존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10살 꼬마에게 "진지 드셨습니까?"라고 묻는 상황을 생각해 봐라.
하지만 이 미국인 교수가 100발 할아버지에게 "밥 먹었냐?"라고 묻는 상황은 정말 무례하다.
이처럼 어떤 언어이던지 말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서 단어 선택과 문법 구조의 선택이 반드시 달라져야만 한다.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는 문장이라 할지라도 단어와 문법 구조에 따라서 상대방이 느끼는 기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충분히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글을 쓰는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 선택과 문법 구조 선택도 이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공부해야 한다.
룸메쌤과 같이 몇 문장을 해석하다가 한국식 정서로 해석하면 복잡해지는 문장 앞에서 걸렸다. 그 문장을 짧게 수정해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Intuition finds its usefulness in science.
직관은 찾는다 그 자신의 유용함을 과학에서
영어는 한국말과 비교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한국말은 인간이나 살아있는 것이 움직이고 동사 행동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 비해 영어는 주어가 사람이건 무생물이건 느낌이건 생각이건 전부 사람처럼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관이 무언가를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I am fearful. 나 두려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어는 이렇게도 말한다.
Fear grips me.
두려움이 날 움켜잡았어.
두 문장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지만 듣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다르다. 보통 소설에서나 읽을 수 있는 구절은 Fear grips me.이다. "나 두려워"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사실적인 메시지만 전달하는 느낌이다. 즉 맹물 영어다. 하지만 "두려움이 날 움켜잡았어"라고 하면 내가 두려운 상황이 어떤 것인지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두려움이라는 존재가 손으로 나의 온몸을 움켜잡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즉, 이 경우는 육수 영어이다.
Intuition finds its usefulness in science.
직관은 찾는다 그 자신의 유용함을 과학에서
위 문장도 육수 영어이다.
Intuition is useful in science.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굳이 저런 육수 영어를 쓰는 이유는 자신의 메시지를 더 강하고 확실하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맹물은 솔직히 맛이 없다. 물론 소중하고 꼭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맹물만 계속 먹어도 좋지 않고 그렇다고 육수만 계속 먹어도 좋지 않다.
맹물과 육수를 적절하게 잘 섞어 먹어야 감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영어도 그래야 한다. 맹물만 배우는 영어에서 육수까지 넘어서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 그러면 영어를 배우는 재미도 더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