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강세
미국 주립대학 중의 하나인 알바니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30대 후반에 시작하는 거라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나이에 엄청 민감해졌다. 하지만 웬걸, 같은 기숙사에 살게 된 한국인 석사 유학생은 40대란다. 크게 한숨을 돌리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란 선인의 지혜를 다시 한번 되뇐다.
내 옆방에 사는 한국인 석사 유학생을 나는 '선생님'이라 부른다. 며칠 전 선생님과 함께 기숙사에서 캠퍼스까지 가는 길을 동행하였다. 20년 넘게 서울에서 회계업무를 맡았던 선생님은 이번에 Criminal Justice (형사 행정학, 응용 범죄학)을 전공으로 석사 공부를 시작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인사과의 '웬수'때문에 뚱딴지 같은 전공을 공부하게 됐단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바로 옆방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 조아시는 영어를 본인보다 더 잘해서 부럽단다.
"어제 캠퍼스 식당에서 조아시랑 같이 점심을 주문해서 먹었어요. 내가 야채를 더 많이 달라고 하니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그런데 조아시가 말하니까 알아듣더라고. 진짜 중국인들 영어 잘 말하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같았으면 나도 선생님의 말이 옳다고 동조하며 영어 못하는 한국인들의 우울한 마음을 서로 달래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선생님, 조아시가 영어를 잘해서 그런게 아니에요. 중국어는 성조가 있고 영어는 강세가 중요한 언어인데, 이 두 언어가 그런 면에서 서로 많이 비슷해요. 아마 선생님은 야채를 영어로 발음할 때 기관총 쏘듯이 '탕탕탕탕' '베-지-터-블'이렇게 발음했었을 거고, 조아시는 '타이탕탕'이런식을 발음해서 더 알아듣기 쉬웠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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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거야? 그러게. 중국인들 영작하는 거 보면 기본적인 단어 스펠링도 잘 틀리고, 문법도 엉망이긴 하더라."
여기서 나의 영어선생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영어는 정말 강세가 중요한 언어에요. 영어라는 단어 English도 우리는 '잉-글-리-쉬' 이렇게 발음하지만, 원어민은 첫음절 '잉'에 강세를 주면서 발음해야지 알아들어요."
더 많은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싶었지만 아쉽게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었다. 급하게 내리느라 서로 인사도 못하고 결국엔 카톡으로 잘 가란 인사를 나누어야만 했다.
성조로 얼버무려 영어를 잘하게 들리는 중국인들에게 기죽지 않고 영어를 당당하게 말하는 한국인들이 어서 빨리 많아졌으면 좋겠다. 영어는 기관총 발사처럼 말하지 말고 오페라 노래처럼 말해야 못하는 영어가 그나마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영어가 된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깨닫고 연습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9월 3일 2021년 SUNY Albany Liberty Terrac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