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에서 시작한 박사 생활이 거의 3주가 되어 간다. 그동안 내가 가장 잘해 온 것은 "한국식"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이었다.
오늘도 두부된장국을 정성껏 끓여 먹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방에 사는 타이완 학생 샤론이 부엌으로 나오더니 말을 걸기 시작한다. 요새 학교 과제도 너무 많고 집도 그립고 너무 힘들단다. 자기 인생에서 부모님 곁을 떠나서 혼자 사는 것은 처음이고" I'm an only children in Taiwan." 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children이 아니라 child인데'
'샤론 진짜 힘들구나. 안아주고 토닥 토닥해주고 싶은데 코로나 땜에 무섭네.'
'혼자라 너무 외로워서 자기 자신을 두 명 이상으로 생각했나?'
한동안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샤론은 자기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오늘 영어단어의 복수 형태에 관한 명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4시가 조금 지난 무렵 같은 과 박사과정 선생님이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과 박사생 줌 모임 시작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4시 30분인 줄 알았는데 4시에 이미 시작했단다.
이런!
두 번째로 하는 모임이라 낯선 얼굴보다는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 더 많아서 반가웠다. 모임 중간에 새로운 박사생이 들어왔다. Ed라는 박사과정 5년 차 남자였다. Ed는 부인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서 알바니에서 먼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자 많은 사람들이 Ed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Congrats!
Congratulations!
나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줬던 한국인 박사과정 선생님도 마지막으로 Ed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Congratulation.

이 메시지를 보는 순간 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영어 표현의 마지막 "s "스펠링을 주의 깊게 신경 쓰지 않을까?
저걸 본 영어 원어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틀렸다고 알려줘야 할까?
안 알려주면 계속해서 s 빼고 congratulation 할 텐데...
우리가 말하는 [축하해], [추카추카]는 전부 Congratulations/ Congrats이다. 단어 끝에 s를 붙여서 복수형으로 만들어야지 축하한다는 말이 된다. s가 빠지면 셀 수 없는 추상적인 의미의 단어가 돼버린다. 그래서 congratulation은 [축하 행위]라는 뜻이 된다. 생각해봐라. 친구들에게 '나 승진했어'라고 말했는데 친구가 '축하해'라고 하지 않고 '축하 행위'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아마도 우린 "야 너 지금 나 비꼬냐?" 하며 열낼것이다.
이 쬐금한 s 하나 가지고 뭘 그리 너스레를 떠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듯이 영어에서 단어 끝에 오는 s는 매우 중요한 문법적인 역할 및 엄청난 의미 차이를 가져오기에 그냥 작은 고추로 넘기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

한때, 영어에서 주어가 3인칭 단수이고 시제가 현재일 때 동사 끝에 붙이는 s를 없애고 가르치자는 어떤 한국인 영어교육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규칙은 한국인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정말 많이 실수하고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문법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영어가 아직까지 3인칭 단수 현재 s를 없애지 않는 이유가 있다.
첫째, 이 s가 있기에 문장에서 동사를 찾는 것이 더 쉬워진다. 영어 문장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와 동사를 정확히 찾는 것이다. 특히 매우 복잡한 문장을 읽을 때 이 기초 지식은 유용하게 잘 쓰인다. (한번 테스트해보기 원한다면 유명한 미국 교육학자 존 듀이가 쓴 책을 영어로 한번 읽어보면 된다.)
둘째, 영어는 주어나 동사 중 단 하나만을 복수 표시를 해준다는 규칙이 있다. (이것 역시 주어와 동사 구분을 쉽게 해주는 역할이 아닐까 한다.) 주어가 복수, 두 개 이상일 경우 (you 포함) 동사는 반드시 단수 취급을 해서 s를 절대 붙이지 않는다. 주어가 단수, 하나일 경우는 반드시 동사에 s를 붙여야 하는데, 시제가 과거가 될 경우에는 과거형으로 동사가 모습이 바뀌므로 굳이 또다시 동사의 모습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기에 s를 붙이지 않는다. 영어는 경제성을 예민하게 따지는 언어이다. 한번 했으면 또다시 하지 않는다.

Children은 s를 단어 끝에 붙이지 않고 child를 복수로 만든 것이다. 왜 s를 붙이지 않고 완전히 다른 모양의 단어가 만들어졌을까? 원래 고대 영어에서는 child의 단수와 복수가 똑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단수와 복수가 똑같아 불편해서 단어 끝에 ru(그 당시에 복수를 만드는 것)를 붙여 복수형으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이것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다시 en이라는 복수 형태를 또 덧붙였단다. 그래서 children은 짜장면 곱빼기 복수 형태인 것이다.
복수 형태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경제성을 따지는 언어가 곱빼기 복수 형태가 된 단어를 만들게 된 걸까?
결국 난 그 한국인 박사과정 선생님에게 s를 붙여야 한다고 말해주지 못했다. 샤론에게도 only child라고 말해야 한다고 얘기해주지 못했다. 약간 이상해도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만 되면 된다고 세세하고 쩨쩨한 문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소통이 문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문법은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무조건 외우는 문법이 아니라, 그 문법이 그 언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s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예전에 들었던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한 외국인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친구들의 버스 요금을 본인이 한꺼번에 결제하기 위해 기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3개요."
처음엔 그냥 애교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실수를 한 다면?
"야, 나 인간이야. 그냥 물건이 아니라고! 너랑 절교야!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