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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빠르게 읽는방법 좀알려줘요

by Sia

옆방 선생님과 금요일 오후에 아는 친구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읽기 과제가 너무 많아서 같이 갈 수 없다고 미안해했다.

"선생님 그럼 제가 좀 도와줄까요? 읽기 과제 파일을 저한테 메일로 보내주세요."

"그래요?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요약 과제예요. 각 파일 읽고 요약해주면 돼요."


선생님이 보내준 파일은 총 3개였고 각 파일은 10장도 안됐다. 시장 보러 가기 전,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첫 번째 읽기 과제를 읽고 요약해서 보내주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읽어요? 난 이거 오늘 하루 종일 읽고 있었는데도 아직도 못 끝냈는데..."


난 나의 영어 읽기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한 시간에 약 20페이지 정도 읽는 속도인데, 글을 잘 읽는 원어민 속도에 비하면 빠른 건 아니다. 그렇기에 나보고 영어를 빨리 읽는다는 사람 앞에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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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 선생님, 나머지는 시장 갔다가 와서 보내줄게요~"

"아, 그래요. 시장 재미있게 보고 와요. 전 계속 과제해야겠네요. 고마워요."


집에 돌아온 후, 약속한 대로 나머지 두 가지 요약 과제를 해서 보내주었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언제 시간 나면 영어 빨리 읽는 방법 좀 가르쳐 줘요."



그래서 그다음 날 기숙사 스터디룸에 같이 가게 되었다.

지난 학기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문법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설명해 주었다.


"진짜 사실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대요. 영어라는 언어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 하나를 정했데요. 그건 바로 '모든 문장에는 주어와 동사 하나씩만 있다"라는 거죠. 그런데 세상이 복잡해지고 지식이 많아지다 보니 문장 하나에 주어 동사가 2개 이상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접속사를 사용하자 하고 약속한 거예요. 접속사 that, which, who, when, where 등등 이런 것들은 그래서 '나 뒤에 또 다른 주어와 동사가 나온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된 거죠. "


"아~ 그런 거야. 신기하네."


"우리말은 문장에서 단어의 순서가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순서 없이 이것저것 말해서 다 알아듣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영어는 순서가 매우 중요한 언어예요. 주어-동사-목적어 순서를 꼭 지켜서 말해줘야 하거든요. 그리고 영어는 명사가 아주 중요한 언어예요."


"그래? 난 동사가 중요한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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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동사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영어 문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동사보다는 명사예요. 영어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가 다 명사거든요. 명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명사를 구체적이고 화려하게 꾸며주는 형용사가 매우 발달된 언어죠. 이 형용사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우리는 정신을 못 차리고 문장을 잘 파악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핵심인 명사를 안 보이게 하는 수풀들이 너무 많은 거죠. 그래서 저는 지난 학기에 학생들과 문장의 핵심 뼈대와 작은 뼈대를 찾는 연습을 하기도 했어요."


"와~ 애들한테 엄청 도움이 많이 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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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전 잘 모르겠어요. 도움이 되었더라면 좋겠지만, 애들은 애들인지라 가르쳐 준다고 다 배우지는 않더라고요. 지금은 새로운 영어 선생님과 어떻게 잘 공부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주어 자리에는 명사만 들어가고 동사 자리는 동사만, 그리고 목적어 자리는 명사 혹은 형용사만 들어간다는 아주 핵심적인 영어 문법 규칙부터 시작해서 영어문장 뼈대 구조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IMG_0610.JPG 지난 학기 수업시간에 다루었던 문법 핵심 뼈대

"영어 문장은 러시아 인형 같아요. 인형 속에 계속 인형이 나오는 거 있잖아요."


"정말 러시아 인형이네. 명사 자리이면 이 거대한 명사 덩어리들이 계속해서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거잖아."


"맞아요. 그래서 문장의 핵심 성분에 해당하는 주어, 동사, 목적어를 찾는 게 중요해요. 모든 문장을 읽을 때마다 찾을 필요는 없고요. 문장이 아주 길어서 이해하기 힘들 때는 주어 동사만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하죠."


한 시간 정도 열정에 넘치는 강의를 마치고 다시 기숙사 방으로 들어왔다. 선생님은 본인 방에 들어가서 읽기 과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쌤이랑 같이 읽을 때는 잘하는데 나 혼자서 하면 잘 될라나 모르겠어."

"선생님 기본 실력이 아주 좋은데요?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보다 훨씬 더 좋아요."

"뭐 중학교 영어실력인 거지. ㅋㅋㅋ"

"아니에요. 제 설명을 이해하는 것도 빠르고, 해석하는 거 보니까 엄청 정확하게 잘하시던데요!"

"그래? 칭찬을 받으니까 힘이 나네! 또 열심히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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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기숙사 전체 긴급 알람이 울린다. 이때는 너무 시끄러워서 방에 있을 수가 없다. 경찰관과 소방관이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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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또 뭔 일이데요.."


"그러게. 한동안 잠잠하다 했어..."


기숙사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새벽 3시에 알람이 울려서 모두가 밖에서 대기를 해야 했던 적인 두 번 정도 있었다.


"참! 나 쌤한테 문법 설명 듣고 읽어 봤는데 좀 속도가 나는 것 같아. 그래서 한국 가족 카톡방에다 자랑질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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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약! 정말요? 너무 잘됐다. 진짜 너무 기뻐요 쌤!"


영어를 통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기쁨은 정말 달콤하다. 얼마나 싱글벙글거렸는지 지금은 얼굴 근육이 조금 아프다. 단기간에 영어를 빨리 읽을 수는 없다.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니까. 하지만 그 과정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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