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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C야

Liberty Terrace Sia

by Sia

브라질 교수님이 나의 기말 과제에 준 피드백의 요지는 이거였다.

넌 C야.

물론 나의 기말 과제 점수를 말씀하셨지만, 난 나의 기말 과제와 나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었다. 영어문제는 이번 학기 계속해서 지적받는 부분이다. 솔직히 교수님 본인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면서 이렇게 계속해서 언어 문제를 지적하시는 것이 제일 속상했다. 나의 영작 실력이 이렇게도 처참한 수준인지 망치로 얻어가면서 깨달아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짜증 나고 힘들다.


C를 받으면서 그동안 학교 성적표를 C, D혹은 E를 받아가는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처음 느꼈던 낙담도 내가 느낀 낙담과 비슷했겠지. 하지만 학습된 무기력으로 그 마음도 아마 무뎌졌을 것이다. 성적이란게 참 가혹한 제도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주관적으로 세운 잣대에 맞춰줘야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이다.


기말 과제에 C를 받았다고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친구 왈,

"대학공부는 원래 교수 스타일을 찾아서 맞춰주는 거야."


그동안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통해 만났던 수많은 학생들이 떠 올랐다. 그들도 나의 스타일을 찾고 맞춰주려고 했던가? 물론 대학원생, 대학생, 중고등학생에 따른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교사와 학생 사이 힘의 역학관계는 비슷할 것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살아온 나의 운명을 탓해야 하는 것인가.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 영어공부를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했던 불만소리가 떠 올랐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국에서 태어나야 했어. 잘못해서 한국에서 태어나서 이런 고생을 하는 거야."


당시에는 물론 그들의 불평이 허무맹랑하게만 들렸는데, 지금은 내가 그들과 똑같은 불평을 토하고 있다니...


이곳 미국 대학원에서는 아무도 나의 '잘난' 한국어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나의 실력은 오로지 '영어'로만 판 갈음이 난다. 물론 나의 영어로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담는 그릇인 영어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몇 년 전 한국교원대에서 들었던 수업에서 나는 한 학기 계속 사춘기 이후에 외국어를 배운 사람은 절대 그 언어의 원어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논문만 읽었다. (정말 맥 빠지는 논문들이었다.)


그래, 인정하자. 난 영어 원어민이 될 수 없다. 예전에는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난 한국에서 태어났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영어 원어민이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한국인의 특성을 버린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기에 언제부터인가는 나의 특성을 살린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브라질 교수님한테서 C를 받기 전까지는.


그들이 불평하지 않는 나만의 영어를 구사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의 불평을 무시하고 싶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고, 특히나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기에 불평을 달게 받아들여 나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결국 C를 받은 기말 과제는 다시 수정을 해서 제출했고 A로 등급 상향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학교에서 영어 성적 E를 받은 아이들이 얻은 상처도 아마 평생 치료받기 힘들 것 같다. 상처가 아물어도 흔적은 영원히 갈 테니까.


그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나의 영어 생각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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