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영어: 관사 이야기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영어공부를 시작하면서 말할 때마다 마음이 께름칙한 표현이 있었다.
"I go to bed early."
난 가난한 농사꾼의 집안에 1남 7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우리 8남매에게 공부하란 소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매일 들었던 소리는 '고추 따라! 소 밥 줘라! 일 좀 해라'라는 지겨운 소리일 뿐. 이런 가난한 살림에 우리 집엔 침대라는 가구는 전혀 없었다. 그냥 방바닥에 얇은 이불 깔고 덮고 자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I go to bed"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그런데 1년 전, 어떤 영어문법책을 읽다가 깨달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것을 이해하려면 영어에서 쓰이는 관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관사는 명사에 씌우는 모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명사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 모두에게 각자 이름이 있듯이,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도 다 이름이 있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명사이다.) 그럼 영어는 왜 명사라는 단어에 모자를 씌워야만 했을까?
첫 번째, 영어에서 명사는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영어는 한국어처럼 조사가 없기 때문에, 단어가 문장에 놓인 위치에 따라서 명사도 되고 동사도 된다.
I want to hold a hand(명사)
He hands(동사) me the paper.
이런 영어의 특성 때문에 이 단어가 명사인지 동사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 줘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명사를 확실하게 표현해 주는 수단으로 관사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영어를 읽을 때 a / an / the/ 복수 형태(-s/ -es)를 자세히 보아라. 이것들은 영어 문장에서 명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이다. 즉, 앞으로는 문장에서 저런 단어를 보면 이런 말을 듣는다고 생각해라.
내 뒤에 명사 따라 나와요!
두 번째, 대충 눈치로 때려 알아맞혀 이해하는 한국말에 비해서 영어는 매우 구체적인 언어이다. 영어는 명사가 1개를 의미하는지(단수), 아니면 2개 이상을 의미하는지(복수) 정확하게 말을 해 줘야 직성이 풀리는 언어이다. (왜냐고?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영어가 상업이 발달한 문화에서 생겨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건을 사고팔 때는 한 개인지 두 개 인지 개수를 세는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 학생이 많아"라는 우리말 표현과 "여기 학생들이 진짜 많아"라는 표현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냥 학생이 많다고 말한 사람한테 너는 왜 '학생들'이라고 복수로 말 안 하고 '한 학생'만 있는 것처럼 단수로 말하니?라고 따지는 한국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영어 명사는 단수와 복수의 개념이 확실하다. 벌써 눈치 없는 영어가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
영어는 사오정이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이 손오공처럼 사오정의 귀를 들어 올려 준 다음에 말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단수와 복수 및 관사가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영어에서 말하는 a와 한국에서 말하는 '하나'라는 의미가 약간 다르다는 것이다. a는 우리말로 '한 개'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 개는 영어로 'one'이라는 단어와 같다. 영어의 관사(a/an, the, 복수형-s)는 의미가 아니라 "조건"을 말한다. 명사 앞에 관사가 쓰이고 명사 뒤에 복수형-s가 붙는다는 것은 이 명사가 눈(실제 사람 눈 + 마음의 눈)에 보이고 셀 수 있다는 조건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유유상종에 해당하는 영어 속담이다. 여기서 a feather는 '깃털 하나'를 의미하지 않는다. 같은 종류의 깃털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a라는 단어가 하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물질 명사라고 생각하는 단어에도 a/ an을 붙일 수가 있다. 물질 명사에 관사를 붙이면 셀 수 있는 명사로 바뀐다. 중요한 것은 명사에 관사를 붙이게 되면 ["보이게 되고" +"셀 수 있는 것"]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1) Iron is a brittle and hard substance.
(2) Bring me an iron. (다리미의 의미)
위 두 문장을 해석하려고 하지 말라. 관사가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철이라는 명사에 관사가 있고 없음으로 인해서 (1) 번의 철은 (원래부터 보이는 것이었으므로) 보이긴 하지만, 셀 수 없는 단어가 되었고 (2) 번은 철은 관사가 있음으로 해서 셀 수도 있고 보이는 단어가 되었다.
눈치가 없는 영어는 무엇이든 정확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줘야 하기 때문에 관사라는 단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바로 a/ an/ the이다. ( 그리고 이에 더해 명사의 복수형 형태도 관사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이해하는데 더 수월하다.) 이 단어들은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이 배우기 가장 어려워하는 단어들이다. 심지어 영어 모국인들 조차도 the의 경우는 헷갈려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는 관사를 적용하는 규칙은 말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서 적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 다 맞는 관사의 규칙을 알기란 어렵다.
일단, 앞 뒤에 아무것도 붙지 않는 영어 명사는 매우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의미하는 침대는 a bed/the bed/ beds/ some bed/ my bed이지 그냥 bed가 아니다. bed는 '잠을 자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I go to bed early"라는 의미는 '난 잠자는 곳에 일찍 가"라는 의미일 뿐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서 확실히 이해했는지 확인해보자.
prison / the prison / a prison 도 상황에 따라서 의미가 정말 달라진다. I went to prison 하면 '난 죄수들을 수감하는 곳에 갔어' 즉, '난 감옥에 갇혔어'라는 의미가 되고 I went to the prison/ a prison/ prisons 하면 '나는 감옥이라는 건물에 갔어 (견학했어)라는 의미가 된다.
즉, 관사는 단어 차원에서 맞고 틀린 게 아니라 문장 차원인 문맥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I went to school. I went to the school. 두 문장이 모두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첫 번째 문장은 '난 학생 신분으로 공부하러 학교에 갔다'는 의미이고 두 번째 문장은 '(공부하는 학생 말고 그냥 방문자 신분으로) 난 그 학교 건물에 갔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상명사(kindness)에 붙는 관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관사가 없다면 그건 그 명사가 추상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라는 증거이다. 추상명사라서 관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추상적이니까 관사를 쓰지 않는 것이다. 관사라는 모자를 쓰고 다니거나, 복수형을 뒤에 달고 나오는 명사는 같은 단어라고 해도 이것들이 있냐 없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gold는 금을 의미하지만, a gold는 금으로 만들어진 어떤 제품을 의미한다.) 보통 이런 것들은 영어 모국인들의 눈에 그 명사가 짜잔 하고 실체를 나타나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추상명사, 즉 실제 눈에 보이지 않는 단어에도 관사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명사에 관사를 붙인다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짠"하고 나타나지는 않는다. 관사를 붙임으로 인해서 셀 수 있는 것이 된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셀 수 있냐고? 바로 "마음으로" 세는 것이다. 이것은 영어가 마치 의인화 기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a kindness는 "마음속에서만" 볼 수 있고 셀 수 있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Treat everyone with kindness. (친절함, 다정함)
He has done me a kindness. (친절한 행위/ 다양한 친절한 행위 중에 하나의 행위)
[친절한 행위는 단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들어가려고 했던 문을 미리 잡아 준다거나, 내가 떨어트린 볼펜을 집어서 줬다거나, 만날 때마다 항상 미소로 인사한다거나... 이 모든 행동들이 친절한 행위들이다. 그리고 위 문장에서 그 남자가 이런 모든 행동들을 나한테 다 한 것이 아니다. 이런 행동들 중에 하나를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문맥을 통해 보면 된다. 그리고 관사가 없이 그냥 kindness로 쓰인 첫 번째 문장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어떤 특정한 친절한 행위 하나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어떤 친절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관사 없이 사용이 된다.]
추상명사는 원래부터 눈에 보이는 단어가 아니었기에 관사를 붙인다고 해서 "짠"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오직 마음속에서만 보이는 단어로 변화되는 것이다. 곰돌이 푸도 우리들의 상상 속에서 말하는 것이지 진짜 곰돌이 푸가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다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한국말에서 친절함이나 친절한 행위는 둘 다 똑같이 취급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이 두 단어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따지지 말고, 관사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마음의 눈에 보이고 셀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차이만 느낄 수 있다면 영어 원어민이 갖고 있는 언어적 감수성을 지닌 것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관사(a/an)가 붙음으로 인해서 뒤에 나오는 명사가 갖게 되는 조건을 한꺼번에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의 눈과 실제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실체 중에 하나
'정'이라는 말은 한국인들의 눈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라는 개념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하지만, 영어는 관사를 이용해서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어느 언어가 더 세련되고 좋은 언어인지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초능력'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 '다 말해야 아는' 언어인 영어를 잘 이해할 때 나올 수 있는 사고능력의 확장을 생각해보자. 한국사람이 "영어도" 잘한다면, 우린 슈퍼 초능력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제시된 영어문법 규칙을 외우기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런 규칙들이 영어에 필수적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아도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초 영어문법들이 왜 영어라는 언어에 필요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 초능력자들이 영어의 본질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