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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식 잣대에 관하여(1)

문법만 맞으면 다야?

by Sia

영어 문법이 정확한 글을 쓰면 그게 끝인 줄 알았다. 영어를 생전 처음 배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에게 영어란 이해 안 되는 규칙을 외워서 정확하게 읽고 써야 하는 존재였다. 아무도 내가 영어로 쓴 글의 내용에 대해서 뭐라 하지 않았다. 문법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만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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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런 경향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여러 가지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있겠지만 난 한글이라는 언어의 특성에서 찾고 싶다. 한글은 참으로 위대한 언어이다. 한글을 모국어로 태어난 우리는 한글이 그리 대단한 언어인지 잘 모른다. (사실 나도 아직까지 잘 모르지만, 영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한글의 위대함이 점점 더 커진다.)


한글은 문장을 만들 때 단어를 어느 위치에 갖다 놔도 뜻은 이해할 수 있다. 영어는 절대 이렇게 할 수 없다. 단어의 위치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어의 위치를 바꾸어 버리면 의미도 달라져 버리게 된다. 이렇게 앞뒤가 콱 막힌 언어가 바로 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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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영혼인 한글이 영어를 만나면 문법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해야 한글의 자유로운 영혼이 영어에서도 활기차게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한글과 영어는 극단적으로 상극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유학 온 워리는 나 보다 3년 먼저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워리는 자신의 문제는 영어문법이란다. 지도교수님의 피드백은 항상 문법 오류에 관한 것이다. 글의 내용은 참신하고 창의성이 넘치지만 문법적인 오류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수업을 듣는 교수님들 마다 워리의 문법 오류를 지적하지만 워리의 성적은 항상 모두 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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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이야기를 듣고 아주 많이 놀랐다. 아니 영어 문법에 오류가 많은 학생이 어떻게 미국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인가? 워리는 석사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을 열기도 하고, 지도교수님 수업을 도와주는 TA(조교) 역할도 하고 있다. 워리의 수업을 듣는 석사생들은 100프로 미국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이다.


문법 규칙이 그렇게 깐깐한 영어는 문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을 두 손 벌리고 받아들이는 사회이다. 영어에 비해 문법 규칙이 그리 까다롭지 않은 한글 사회는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나보다 2년 먼저 박사과정을 시작한 같은 과 한국인 유학생 형우는 자신의 영어 글쓰기 문제는 글의 구조란다. 대학교 글쓰기 센터에서 첨삭을 받으면 문법적인 오류는 거의 없지만, 문제는 핵심을 서두에 말하지 않고 맨 마지막에 말하는 것이란다. 영어는 성격이 참 급한 언어이다. 메시지의 핵심을 항상 먼저 말해줘야 급한 성격이 가라앉고 차분히 글을 읽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글은 느긋한 언어이다. 여러 가지 구구절절한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나서야 드디어 핵심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는데 영어식 잣대를 갖다 들이지 않고 한국식 잣대를 세우는 게 문제의 발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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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이 중요한 영어이지만, 영어는 처음부터 완벽한 문법을 요구하지 않는다. 문법만 맞으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간결함과 표현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한 잣대를 들이댄다. 영어로 쓰인 고전 문학 작품들이 고전이 이유도 바로 이 두 가지를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는 두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대여섯 단어로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또한 의미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표현도 싫어한다. 영어식 잣대에 기준을 맞춰 학교 영어교육이 바뀔 수 있을까?


앞으로는 영어식 잣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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