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L 영어캠프 봉사기
미국 초등학교 1학년 영어캠프 봉사활동기
3주간의 영어캠프 봉사활동이 드디어 끝난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고 7시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직장이 아니라 '순수한' 봉사활동이기에 "오늘은 못 간다고 말할까?"라는 악마의 달콤한 유혹을 듣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직장이었으면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매일 출근했겠지만, 봉사이기에 직장과 같은 의무감이 없다. 하지만, 봉사하겠다고 하고서는 들쑥날쑥하는 나를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 때문에 하루도 빠질 수 없다. 캠프 마지막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그 마지막날이 오고야 말았다.
캠프 마무리를 하면서 엠마 선생님은 아이들을 대형 스크린 앞 카펫으로 모은다. 3주간의 캠프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재미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말자고 한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아이들은 옆에 앉은 친구들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바이슈:"저는 고무찰흙으로 귀여운 바다동물 만드는 게 좋았어요."
옴: " 저는 빙고 게임이요!"
엠마선생님:" 나도 빙고 게임 재미있었어"
에이든: "전 힘들었어요."
엠마선생님:"에이든, 뭐라고?!!"
놀라서 휘둥그레진 엠마선생님의 두 눈을 보면서 에이든이 활짝 웃는다. 매일 아침이면 빨간 크레용을 가져와서 "이거 부러뜨릴 거예요"라고 나에게 말하며 크레용을 두 손으로 잡고 부러트리는 시늉을 하던 에이든. "그러면 안돼"라는 말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더 부채질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래서 에이든의 마음을 읽어주었다. "크레용을 부러뜨리고 싶구나. 하지만 부러뜨리면 안 된다는 거 너도 알지?" 에이든은 그러면 몇 번 더 크레용을 부러뜨리는 시늉을 하고 난 후에 크레용을 제자리에 두고 왔다.
캠프 마지막 날 에이든은 빨간 크레용 세 개나 가져와서 나에게 보여주며 부러뜨릴 거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 크레용을 제자리에 온전히 두었다.
너무나도 솔직한 자신의 대답에 머쓱해져서 에이든이 다시 대답한다.
에이든:" 저는 소라게를 직접 본 게 가장 좋았어요."
케년 선생님이 집에서 기르던 소라게 두 마리를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뾰족한 집게발이 무섭다고도 하면서 아이들은 소라게에게 자석처럼 다가갔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아이들은 같은 스쿨버스를 타는 사람끼리 모여서 일렬종대한다. 세상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던 옴이 나에게 다가온다. 옴은 며칠 전 아빠가 사준 닌텐도 때문에 사는 것이 다시 좋아졌다고 한다.
옴의 키에 맞춰 무릎을 구부렸다. 옴이 오른손을 내 어깨에 올리더니, "여름 잘 보내세요!" 하며 세상을 이미 다 살아본 듯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인다. 자원봉사자인 나에게도 작별인사를 해주는 옴이 너무 고맙고 귀여워서 옴을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옴. 너도 건강하게 잘 보내!" 나무 잔가지 같은 옴의 어깨를 꼭 안아준다.
아이들을 태운 스쿨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날뻔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작고 귀엽다고 아이들을 나도 모르게 얕잡아 보았다는 것을.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라도 나랑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들이라고 모르기만 한 게 아니다.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모든 것이 한 성인과 비교해 나무랄 데 없다.
아이들도 다 큰 성인이다. 그들의 세상은 발육이 완벽하지 않고 뭔가 더 자라야 하는 모자란 상태가 아니라 "항상" 완벽하다. 아이들의 작은 몸집과 손발이 그들의 완벽함을 감춰버리기에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고 보면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은 그들에게 장점이기보다는 단점이다. 이 귀여운 가면을 뚫고 아이들 내면에 살고 있는 '다 큰 어른'을 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교육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 교육학자는 말했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존중으로 진지하게 들어주고 반응해 주는 것이 참다운 교육이다. 마음과 마음은 서로 통한다. 교사가 존중으로 아이들을 대하면 아이들도 존중으로 반응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신통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짜 존중은 금방 들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