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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아니라고? 로또 맞네!

by Sia

미국 대학원 새 학기가 시작됐다. 학과에서 긴 여름방학을 끝내고 다시 캠퍼스로 돌아온 학생과 교수님들을 위해 피크닉을 열었다.


준비된 간단한 음식을 먹기 전에 사람들은 작은 쿠폰을 하나씩 받았다.

[피크닉에서 받았던 래플 쿠폰]


피크닉에 같이 갔던 중국인 친구는 이번에 처음 참석하는 피크닉이라며 자꾸 이것저것 물어본다.

[사진출처: unsplash; Svetlana Kuznetsova]


쿠폰을 받으며 중국인 친구가 "이건 뭔가요?"라며 행사 진행자에게 묻는다.

“여기에 쓰인 번호가 중요해요. 나중에 학과장이 번호를 몇 개 뽑을 건데 당첨된 번호는 선물을 받아요 ”


중국인 친구는 설명을 듣고 “아~ 로또구나!” 한다. 하지만 설명해 준 사람은 로또가 아니라 래플이라고 정정한다. 친구는 오케이 하면서 이해 못 한 표정으로 뒤돌아선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새로운 교수진을 소개한 후 학과장이 번호를 뽑기 시작한다. 세 번째 번호를 부르는 순간 친구가 나를 보고 해맑게 웃으면서 말한다.


“ 내가 맞았어. 이거 로또 맞네!!”

[사진출처: unsplash; dylan nolte; 로또]

[사진출처: unsplash; Julia Morales; 래플]


로또와 래플 둘 다 비슷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은데, 왜 여기서 미국 사람들은 굳이 로또라고 명명하지 않고 래플이라고 말하는 걸까?


lotto [로또]

숫자 맞추기 게임, 복권, 로또

[사진출처: unsplash; Waldemar]


lottery [로터리]

도박

제비 뽑기, 추첨분배, 운, 재수


로또나 로터리 둘 다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의미상으로 보면 로터리가 로또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로또는 도토리 안에서 구체적인 물건을 의미한다.


raffle [래플]

쓰레기, 잡동사니, 그물에 뒤엉킨 것

어떤 기금 모금을 위해 파는 복권

추첨에 당선자에게 상품을 주는 것

추첨식 판매법 (물품값을 여럿이 치르고 제비로 당첨된 사람이 그 물건을 오롯이 차지하는 것)

추첨식 판매법으로 팔다

[사진출처: unsplash; Mel Poole]


잡동사니, 그물에 뒤엉킨 것이라는 의미와 복권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로또와 마찬가지로 래플 티켓을 뽑을 때는 속에 있는 티켓을 마구잡이로 섞는다. 이 점에서 "잡동사니"라는 의미를 가진 래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로또와 래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첫째, 래플은 항상 당첨자가 있다. 하지만 로또는 당첨자가 없을 수도 있다.

둘째, 래플은 표를 받는 사람이 로또처럼 숫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로또는 자동이 아닌 수동인 경우 표를 사는 사람이 숫자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셋째, 로또는 당첨자가 거의 대부분 돈으로 상금을 받지만 래플은 돈보다는 어떤 물건을 받는다. (물론 래플의 경우도 돈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의 수가 로또에 비해 더 적다.)


중국인 친구가 끝까지 래플을 로또라고 우긴 것은 영어 어휘가 충분하지 않고 단어 간의 미묘한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친구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 위에 죽은 동물의 사체를 봤다. 바늘 같은 것이 온몸에 둘러 싸여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동물 중에 바늘이 있는 것은 고슴도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미국인 친구에게 저기 hedgehog 보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저건 hedgehog가 아니라 porcupine이라고 고쳐준다.


고슴도치 (헤지호그)는 호저(폴큐파인) 보다 훨씬 더 몸집이 작고, 여기 미국에서는 고슴도치가 살지 않는다며...

[사진출처: unsplash; Gabriel Martin]


친구의 말을 듣고, '에고, 그거나 저거나 다 똑같지 뭐. 그냥 눈치로 알아채면 안 되나?'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영어는 한국말에 비해 뭉뚱그려서 대충 말해도 알아듣는 눈치가 매우 약하다. 매우 정확하고 구체적인 단어를 선택해서 말해줘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고슴도치와 호저는 완전 다른 종이다. 고슴도치를 호저라고 하는 것은 개를 보고 고양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영어를 배우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잣대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상황에 맞춰 조금씩 바꾸는 태도이다.


로또라고 알고 있는 이 상황을 미국인이 래플이라고 한다면, 로또와 래플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무조건 래플이 내가 알고 있는 로또와 똑같다고 래플이 로또인 것이 아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유연한 사고와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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