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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타월? 페이퍼타월? 둘 다 맞는 이유

영어공부 좌충우돌

by Sia

혼자 살 때는 소모품 살림살이를 엄청 아꼈다. 키친타월, 화장실용 화장지 등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이런 소모품에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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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나서는 '남편돈은 이제 내 돈이고 내 돈도 내 돈'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소모품을 정말 맘껏 소비한다. 그래서 키친타월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루 저녁을 준비할 때마다 키친타월을 몇 번이나 싹둑싹둑 잘라 쓰는지 모르겠다. 1장이면 충분한데도 3장을 쓰는 남편도 한 몫한다.


남은 키친타월이 2개밖에 없어서 남편에게 키친타월 좀 사두라고 했다. 그리고 키친타월 사는 김에 화장실 화장지와 사과도 사 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다 이해했는지 테스트했다.


(선생 기질 발동한) 나: "내가 3가지 사 오라고 했어. 그 3가지 뭐야?"

(졸지에 중학생이 된) 남편: 아이고, 다 기억해. (오른손 검지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며) 사과, (손가락 하나 더 세우고) 화장실 화장지, (마지막으로 손가락 하나 더 세우며) 그리고 네가 키친타월이라고 말하는 페이퍼 타월."


남편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의 '선생 기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창피한 마음 5프로와 이해가 안 돼서 답답한 마음 80프로, 계속 반복되는 나의 실수의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 5프로, 남편이 나에게 답을 말해주길 원하는 마음 5프로로 다시 물었다.


나: "난 왜 자꾸 페이퍼 타월을 키친타월이라고 하는 거지?"

남편:...


결국 내가 더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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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키친타월: 타올은 잘못된 표현이다. 타월이 맞는 표현이라고 국어사전은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타올이라고 부른다. 왜그럴까 궁금하다!?]


첫 번째,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키친타월이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부엌이라는 키친에서 사용하는 타월이니까. (그리고 우리에겐 '행주'라는 단어가 또 있지 않은가?!) 그럼 왜 미국사람들은 페이퍼 타월이라고 부르는 거지? 타월이 종이(페이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보통 미국에서 키친타월은 면으로 만들어진 수건이다. 우리나라에서 행주도 보통 면으로 만들어진 수건이라서 미국의 키친타월과 비슷하지만, 미국사람들은 깨끗이 씻은 그릇을 키친타월을 이용해 물기를 닦아내는 데 사용한다. 그릇을 씻고 공기 중에서 말리는 전통 한국식 그릇 씻기와는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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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말하는 키친타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핸드폰과 셀폰(cell phone)도 생각이 난다. 손안에 쏙 들어가는 휴대전화를 한국사람들은 콩글리쉬로 핸드(hand) 폰(phone)이라 하지만, 미국사람들은 cell(세포)처럼 작은 크기의 전화라고 해서 셀폰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사람들은 물건의 사용용도에 따라서 물건에 이름을 붙이고 미국사람들은 물건이 만들어진 재료와 물건에 쓰인 재료의 특징에 따라서 이름을 붙이는 것 같다. 나의 이런 결론을 미국사람인 남편에게 말해줬다.


남편: "글쎄...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데. 독일사람들은 핸디(handy)라고 불러. 그러고 보면 한국사람이랑 비슷하잖아."


영어랑 한국어 말하는데 뚱딴지스럽게 갑자기 웬 독일어 타령이람!


영어원어민이지만 독일어가 더 편하다는 남편은 독일어가 영어의 증조할머니라고 생각한다. 독일어와 영어는 많은 측면에서 비슷하다. 그래서 남편의 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결국 한국사람들은 영어원어민 사람들보다 더 영어 조상들처럼 생각한다는 말인가?!


단어의 기원을 파헤쳐 보자!

towel의 기원은 '제단에 사용되는 옷'이라는 네덜란드어에서 기원되었고 이와 관련된 독일어'씻다'라는 의미가 있다. 결국은 이 기원들이 합쳐져서 '씻는 데 사용되는 옷, 옷감'이라는 의미가 된 것이다.


한국말로는 수건이 되었는데 수건은 얼굴이나 머리를 씻고 나서 말리는 욕실용 '수건'도 되고 부엌 싱크대 주변에 흘린 물을 닦아내는 행주로 사용되는 '수건'도 된다. (참고로, 영어는 욕실용 수건은 bath towel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어는 towel이긴 하지만 옷감이 아닌 종이로 만들어진 towel은 기존 towel과 구별하기 위해 paper towel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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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이렇게 나의 생각을 파헤쳐보고 영어단어 기원까지 들여다봤으니 나중에 페이퍼 타월을 키친타월이라고 부르는 실수를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미국에서는 페이퍼 타월이라고 쓰는 게 맞고 한국에서는 키친타월이라고 쓰는 게 맞다. 결국은 어떤 표현이 더 맞고 정확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상황이나 어느 장소'에서 더 정확한 단어나 표현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올바른 영어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키친타월도 맞고 페이퍼 타월도 다 맞다. 굳이 키친타월을 '콩글리쉬'라고 하면서 깔아뭉갤 필요는 없다. 한국사람들이 영어를 차용해서 우리 나름의 독창적인 단어를 만든 것이니까 말이다.


미국에서는 페이퍼타월이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키친타월이라고 부르자. 같은 물건을 왜 이렇게 다르게 부르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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