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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Dec 16. 2023

영어 공부법 홍수 영상을 보다가

며칠 전 유튜브에서 영어 공부법 관련 영상을 찾아서 봤다. 영어공부법을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영어교사들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가끔씩 하는 짓이다. 말 잘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영상들이 너무 많다. 내가 몰랐던 내용도 깔끔하게 설명한다. 한참을 동영상에서 헤매고 있는데 미국인 남편이 옆에 앉아 영상을 같이 본다. 백인 여자가 꽤 출중한 한국말로 영어공부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갑자기 난 '영어교사'라는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영상을 끄고 노트북을 닫아 버렸다.


"나 직업을 잘못선택한 것 같아. 뭔가 희소성이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했는데, 영어교사는 천지에 널렸잖아."


매사 비관적인 나의 목소리를 싫어하는 남편은 천장을 바라보며 눈알을 돌린다. 

"영상에 나온 여자가 한국말로 해서 무슨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영상 너무 정신 사나웠어. 배경뒤에서 계속 움직이는 고양이 많이 거슬려."


유창하고 그럴듯한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는 여자의 영상에서 나는 도저히 '단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거슬렸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난 빵 터진다. 웃음을 진정시키고 난 후 다시 영상의 여자를 두둔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그렇다 쳐도, 이 여자가 제안하는 영어공부법 정말 일리 있어."

"내가 봤을 때, 그 영상은 너를 향해 '말' 화살을 쏘고 있는 것 같더라 (It is talking at you, not to you).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아."


남편의 응답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대부분의 영어 관련 영상은 전부 '주입식'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영어공부법은 주입식이 아니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어공부법이다. 그러나 순간의 희망이 눈보라 속의 성냥개비처럼 꺼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해.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추천하는 영어공부법이 인기가 없잖아."

남편은 나의 끈질긴 부정적 사고에 답답해져 '악'소리를 지른다.



몇 년 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영어선생님은 '영어과목은 가르칠 이득이 별로 없는 과목'이라고 한 것이 기억난다.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 선생님의 논리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난 그저 묵묵히 들었다. 하지만 그 후 그 선생님의 말은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주입식으로 배울 때 영어는 이득이 일도 없는 과목이다. 하지만, 영어가 수학이나 과학과 연계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한국사회에서도 영어와 거리가 먼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도 영어를 할 줄 알면 그 사람의 몸값이 저절로 올라가게 된다. 영어라는 언어적 도구를 활용해서 더 넓은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간이 가진 가장 최고이자 가장 오래된 '기술'이다. 기술(technology)은 원래는 '문법'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출발했고 여기서 어떤 행동이나 작업을 하는 방법, 시스템, 기술을 의미하게 되었다. 문법(grammar)은 원래 [문자에 관한 예술]을 의미하는데, 예술(art)이란 배움과 훈련의 결과로 생긴 기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문법이란 [배움과 훈련의 결과로 인해 생긴 문자에 관한 기술]이다. 이것이 기술(technology)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주요 핵심만 짚자면, 언어는 예술이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도 예술은 '주입식'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예술은 끊임없는 연습과 감각 그리고 철학이 필요하다. 영어공부할 때 '생각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도와주는 도구이기 이전에 복잡하고 뜬구름 잡는 나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다. 영어책이나 유튜브 동영상에 나오는 영어는 '나의 생각'을 표현한 영어가 아니다. 남의 영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 절대 영어를 예술로 배울 수 없다. 물론 나의 영어 지식이 얕아 한국어를 이용해 만든 나의 생각을 그대로 영어로 표현할 수 없다. 여기서 나의 생각을 표현하라는 말은 영어책이나 유튜브에서 나오는 영어에 대해서 '딴지'를 걸라는 말이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왜 그들의 말이 오른지 아니면 그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쓰는 말도 절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러면 이 글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잠기면서 그 영어 표현은 진정으로 내 것이 된다. 생각 없이 뇌를 빼고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언어는 '생각을 명확하게 해 주도록 도와주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생각을 동반해야 언어의 본질적인 핵심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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