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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Dec 19. 2023

내 심장을 갉아먹는 걱정이 느껴질 때

"내가 하는 짓이 잘하는 짓이야" 매거진

출근 전 남편은 오늘 하루 종일 100% 비가 온다며 얼굴을 찡그리며 나갔다. 근처 중학교에 봉사활동 가는 날이라 나도 험악한 날씨를 온몸으로 맞아야만 했다. 빗물에 젖지 않게 롱코트에 어그 부츠로 무장하고 나갔다. 바깥 기온은 롱코트를 입기에는 너무 따뜻하다. 하지만, 빗물이 청바지와 양말에 스며들지 않아 나의 선택을 스스로 칭찬한다. 나 자신을 칭찬하는데 구두쇠지만, 오늘 난 칭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번주 수요일 27명의 미국 중학생 7학년들 앞에서 짧은 '연설'을 해야 한다. 이미 아이들의 수학, 과학, 영어, 사회 선생님에게는 나의 박사학위논문 연구에 참여하겠다는 동의서를 받았다. 이제는 아이들과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몇 주 전부터 계속 이 걱정 때문에 코 밑에 물집이 생겼다. 물집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단언컨대, 학부모 동의서를 받은 후에 사라질 물집이다. 2년 반 전, 박사를 시작하면서 등에 났던 대상포진이 재발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학부모 동의서에 대한 걱정을 잊어버리려고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도 찾아서 보고, 소설책도 읽어보고, 잠도 자보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던지 어떤 일을 하던지 이 동의서 걱정은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한다.


오늘 아이들은 수학과 사회를 배웠다. 사회시간이 끝난 이후 하교를 한다. 킴의 교실에 둔 나의 가방과 롱코트를 주섬주섬 챙겨 집에 가려는데, 킴이 선생님들 동의서 받는 건 어찌 되고 있는지 물어본다. 이미 모든 선생님들의 동의서를 받은 터라 이젠 학생과 학부모 동의서 받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나의 걱정보따리를 푼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제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동의할지 너무 걱정이 돼요. 이 걱정이 나의 심장을 갉아먹는 게 느껴질 정도라니까요."


킴은 나의 마음을 느꼈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다.

"동의를 많이 못 받으면 또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우리 같이 찾아봐요."


이 중학교를 연구 장소로 활용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을 했을 때도 걱정이 많았다. 그때 킴은 학교가 허락하지 않으면 본인이 집적 가서 따지고 허락을 받아내겠다고 하면서 나를 옹호해 줬다. 나보다 더 든든하게 나를 옹호해 주고 지켜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킴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8학년 ENL 선생님 로라가 교실로 들어온다.

"와~ 저기 무지개 좀 봐요!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리 심각하게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무지개를 보니 그게 무슨 일이든지 잘 될 거라는 징후네요!"


"저 무지개가 시작하는 곳이 선생님 사는 곳 맞죠?"

킴의 말처럼 선명한 무지개가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시작되고 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 건물을 나온 순간, 내 인생 처음으로 온전한 무지개를 목격했다.

얼른 휴대폰으로 찍어 킴에서 메시지를 보낸다.

킴 메시지: "It's a double now!"

쌍무지개가 떴다.

쌍무지개 전체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무지개의 양쪽 끝만 하나씩 담아본다.


무지개를 본 이 순간만은 동의서 걱정이 내 심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 심장에 주인처럼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걱정의 얼굴에까지 쌍무지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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