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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Jan 06. 2024

나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영어공부

지난주 시부모님은 55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 남편이 주중에 일하는 관계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일요일 점심 시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한참 먹는데, 시아버지가 말이 없는 나에게 한마디 건넨다.

"넌 말이 별로 없구나. 다 알아. 우리가 주고받는 영어를 공부하는 거지?"


웃음으로 넘기는데, 시어머니가 말을 이어나간다.

"네 영어는 완벽해. 그런데 난 엘리 영어를 듣는 게 참 힘들다. 그 애는 목소리가 너무 가늘어서 그렇지 않아도 귀가 안 들리는데 알아듣기가 참 어렵다."


엘리는 남편 동생의 멕시코 부인이다. 미국에서 화학분야 박사학위를 받고 엑손모빌이란 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짙은 스페인 억양으로 영어를 말해서 나도 가끔씩은 이해하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엘리의 아들 네 살 백이 맥스도 영어보다는 스페인어를 더 잘한다. 


맥스의 멕시코 사촌들은 맥스한테 영어를 배우길 원했다는 이야기를 남편이 꺼내자 시부모님들은 순간 빵 터진다. 남편 왈, "맥스가 미국에 사니까 자연스럽게 영어도 잘할 거라 생각했던 거죠."



영어 발음에 대한 열등감은 언제나 나의 짐이다. 친분이 있는 미국인들이 나의 영어발음이 '거의' 완벽하다고 말해주는 것을 몇 번 들었지만, 난 내 영어발음이 절대 완벽함 근처에도 못 간다는 것을 안다. 엘리의 스페인 억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영어 발음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그날 밤 바로 시작했다.


예전에 어디선가 영어발음은 한국어와 '발성'부터 다르기 때문에 이 발성법인 복식호흡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리 해도 복식호흡을 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었다. 결국 유튜브에서 '영어발성법'을 검색하다 언어스피치치료사가 만든 잉클 (English Clinic by Julie Song) 채널을 발견하게 됐다.

https://www.youtube.com/@englishclinic_byjuliesong

너무 좋은 영상들이 많아서 뭐부터 봐야 할지 몰라서 결국 영상 제목 중 가장 끌리는 것부터 보기로 했다. 


잉크의 쥴리는 한국말할 때 사용하는 본인 목소리의 피치를 발견하고 그 피치를 이용해 영어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xYHlX2xkqk&t=0s) 하품 기법, 흠흠 기법, 어어 기법 세 가지 기법을 소개하면서 쉽게 자신의 피치를 찾는 방법을 소개했다. 영상 댓글에 어떤 사람은 언어기법이 자기한테 가장 잘 맞는다고 했는데 난 하품 기법이 잘 맞는 것 같았다. 하품 기법으로 이용해 나한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피치를 찾았다. 


그다음 내가 본 영상은 공명에 관한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 모음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어에 비해서 영어는 모음을 사용하는 자리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삼각형꼴인 반면 영어는 사다리꼴이다. 그래서 말을 할 때 사용하는 입안의 공간이 한국어에 비해서 더 크다. 공간이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어는 소리가 울리는 '공명'소리가 한국어보다 더 크다. 결국 내 입이 동굴이라는 느낌으로 목청을 확 열고 입 안의 공간을 크게 해 준다고 상상하며 내 입안에서 공을 굴 리를 느낌으로 말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자연스럽게 복식호흡도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문장 맨 마지막 단어는 둥그렇게 아래로 내려준다는 느낌으로 마무리해 준다. 


이어폰을 꽂아 들으며 영상에 나온 문장을 내 휴대폰으로 한번 녹음했다. 평소 내가 하는 영어 목소리와 비교해 매우 다른 느낌이다. 평소 내 영어목소리는 약간 가늘고 높이 올라간 느낌이 든다면, 이번에 낸 목소리는 더 낮고 굵고 뭔가 더 안정적이다.


잉클 채널의 다른 보석과도 같은 영상을 정신없이 보면서 따라 하는데, 부엌에 있던 남편이 다가와서 날 멈춘다.


"이거 꼭 말해줘야 할 것 같아. 방금 네가 말했던 소리 네가 한국말할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이랑 정말 똑같았어. 정말 자연스러워!!"


양손으로 엄지척해 주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난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내가 냈던 목소리는 나의 평소 영어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난 너무 어색했다. 일부러 입을 크게 벌리고 목청을 확 열어주고 입안 동굴을 만들어낸 다는 생각을 하며 영어로 글을 읽으려니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고 자란 사람에게 그 목소리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영어 목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내 목소리 피치에 가장 어울리는 나의 영어목소리인 것이다. 내 몸은 아직 한국식 억양과 목소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나의 영어목소리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영어 모국어자들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한 목소리로 들린다는 것이 아이러니 역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순간처럼 들린다.



영상을 접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이젠 영어 듣기, 말하기, 읽기가 너무 불편해졌다. 내 머릿속에서 나만의 가장 자연스러운 영어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일상을 생활하려고 하니 답답했다. 평소 하던 대로 영어를 말하고 읽으려고 해도 우여곡절 찾은 나의 영어목소리가 아른거려 다시 나도 모르게 연습하게 된다. 


결국, 영어공부는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었다. 한국식 억양이나 한국식 악센트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에 가장 자연스러운 영어목소리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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