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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08. 2024

영단어 많이 외우고 영어독해 문제 많이 풀면 되나요?

작년 페루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에스테파노는 무슨 연고인지 말을 하지 않았다.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말하는 것도 못 들었다. 말을 하지 않는 이 아이를 보고 아이들은 "에스테파노 벙어리야?"라고 무감각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며칠 전, 에스테파노를 담당하는 킴 선생님은 아이의 부모님과 면담했다. 스페인 통역사를 통해 이뤄진 면담에서 아이의 부모님은 페루에서 있었던 고역스러운 일을 회고하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친구도 많고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던 아이는 미국이라는 낯설고 거친 환경에서 전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공부도 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벙어리처럼 말하지 않고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과 교감하지 않는 것이 에스테파노에겐 가장 안정감을 줬겠지...

다행히 올해 에스테파노는 Hi와 Bye, '화장실가도 되나요?' 정도는 영어로 말한다. 스페인어도 곧잘 말한다. 킴 선생님의 이름은 아직 몰라도 내 이름은 기억하고 가끔씩은 불러주기도 한다. 에스테파노의 입은 에스테파노보다 한 살 많은 8학년 생 조세프가 학교에 오게 되면서 조금 더 터졌다. 


온두라스에서 온 조세프가 아는 영어라곤 "coffee with milk." 이 뜬금없는 표현에 킴과 나는 빵 터졌다.

영어로 숫자를 셀 수 있냐는 질문에 확실한 답변을 주지도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에스테파노와 조세프는 함께 기초 영어를 배운다. 에스테파노는 조세프를 위해 스페인어로 번역을 해주면서 목소리에 당당함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아이들의 수업에 같이 들어갔다. 45분간 아이들이 배운 건 What's up?, What did you do on the weekend? 그리고 수학, 과학, 영어, 사회 과목 영어 이름이었다. 


에스테파노와 조세프를 보면서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암기식과 문법 위주인 영어공부법이 아직 만연하기는 하지만, 이곳 미국보다는 오히려 한국이 영어기초를 배우는데 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보석 같은 영어공부법은 인터넷에 무료로 널려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까지 제대로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조카는 이번 방학 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카톡을 보냈다.

영어단어 많이 외우고 영어독해 문제집 많이 풀어보면 되나요?


영어는 언어다. 무조건 영어를 많이 한다고 영어는 절대 늘지 않는다.  에스테파노는 1년 넘게 미국 중학교 생활을 하면서 모든 과목을 영어로 듣고 배웠다. 하지만 에스테파노의 영어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물론 영어를 아예 공부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조건 외우고 많은 문제집을 풀어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맨땅에 헤딩하는 공부는 오히려 나중에 가면 나의 영어실력에 독이 될 수 있다. 영어실력에 대한 자괴감, 남과 비교해서 느끼는 열등감, 죽어서 미국사람이나 영국사람으로 환생해야지 이겨낼 수 있는 '영어원어민' 콤플렉스 등 독성 가득한 생각을 오히려 부채질하고 키워줄 뿐이다. 

언어는 '표현'이다. 내가 이해한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가 바로 언어다. 사회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영어는 사회 경제적으로 우호적인 지위를 갖는다. 그래서 한국식 억양이 묻어 나오지 않는 원어민 다운 영어발음에 훨씬 더 많이 집착한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가장 집착해야 할 부분은 나의 생각과 감정, 느낌을 어떻게 하면 다양하고 풍부하게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다. 한국말로 표현할 때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영어로 하면서 뭔가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그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대학생 시절, 친구는 할머니와 싸웠다고 하면서 울분을 나에게 토했다. 한참 영어공부를 같이 하고 있던 시기라 친구는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고 한다. 친구 가슴속에 가득 찬 마음은 angry라는 평범한 단어로는 표현하기에는 너무 강했다. 그래서 영어사전을 찾아봤고 infuriated (격노한)라는 단어를 발견했다고 했다. 


영어는 나의 적이 아니라 내 몸 여기저기 결리고 쑤시는 곳을 찾아서 풀어주는 개인 마사지사다.

문제는 이런 개인 마사지사를 우리는 돈을 주고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영어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영어를 알아가야 영어도 나를 알 수 있게 된다. 


조카에게 나는 영어받아쓰기 연습을 먼저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듣기를 하면서 영어단어 공부, 문법 공부도 같이 병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받아쓰기다. 영어 소리에 귀가 트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영어문자 공부를 아예 하지 말고 소리만 들으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대본이 있는 영어 오디오나 비디오는 요즘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해나가는 꾸준함과 3개월 이상 하겠다는 의지다. 하루 10초만 받아쓰기를 해보자. 물론 10초이지만 잘 안 들리기에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 해서 아마 30분은 걸릴 것이다. 처음에는 틀려도,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냥 들리는 대로 다 써본다. 영어로 스펠링을 적을 수 없으면 한국말이라도 소리를 적으면 된다. 들리는 모든 소리를 다 적었다고 생각하면 그때 대본을 보고 내가 맞은 것과 틀린 것을 비교한다. 


일단 영어 귀가 트이면 영어 눈이 트이는 것은 오히려 더 쉽다. 


영어 입이 트이는 것은 반드시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저절로 트일 수밖에 없다.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한국상황에서 가장 좋은 기초 영어공부는 그래서 영어 받아쓰기다.


영어 받아쓰기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다. 어떤 한 가지 방법만 좋다고 믿고 무조건 따르지 말고 자신에게 적합한 최고의 방법을 생각하면서 고안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가장 좋은 영어공부 방법은 항상 생각하고, 느끼며,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영어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 주는 도구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생각하지 않고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영어를 제대로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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