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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Aug 30. 2024

한국식 억양 놀리면 '이것'

소속된 대학이 미국 주립대학이라 새 학기가 시작되는 8월 말에는 항상 온라인 연수를 받아야 한다. 이것저것 할게 많아 마음만 분주한데 학교에서 9월 말까지 온라인 연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모든 일을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는 한국식 근성 때문에 보통 같았으면 바로 연수를 들었겠지만, 며칠 안에 내야 하는 과제가 있어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오늘에서야 과제를 끝내고 30분 정도 걸리는 온라인 연수를 틀었다. 미국 시민권에 관한 타이틀 6 (Title VI)였다. 세금을 받는 모든 미국 대학이나 기관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법이다. 법의 골자는 어떤 사람의 인종이나 외모 등을 가지고 놀려서는 안 되며, 만약 이런 일이 발생했을 시에는 보고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영상을 켜놓고 다른 웹사이트를 보려고 하니 영상이 자동으로 멈춘다. 그래서 영상은 보조 모니터로 옮겨놓고 메인 모니터로는 웹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귀를 쫑긋 세우는 말을 들었다. 


"foreign accent"

외국식 억양

출신 국가에 기반한 차별을 금지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예를 들기 시작했다. 민족성이나 혈통과 관련된 사람의 외모, 옷차림 혹은 말하는 방식에 대해 희롱하거나 괴롭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구체적인 예로 피부 색깔, 신체 특징, 종교적 복장, 말할 수 있는 외국어, 외국식 억양 혹은 외국식 이름이 있었다.

온라인 연수의 한 장면을 찍은 사진
누군가 내 한국식 영어 억양을 가지고 놀리면 미국 법에 위반된다


물론, 미국 세금을 받는 학교나 기관에서 발생되는 사안으로 제한적이긴 하다. 그래도 미국법이 나의 한국식 영어 억양을 법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을 급하게 불렀다.

"외국 억양 가지고 놀리면 위법이란 거 알고 있었어?"

"Duh~!" (당연하지)

"근데, 하버드 대학이나 예일 대학과 같은 사립대학은 위법이 아니겠네?"

"뭐~! 그럼 그 대학에서는 정부 지원 사업에 손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말이야?"

"아~ 그렇구나."

"그래서 하버드 대학 총장이 사임한 거잖아."

"그 총장은 타이틀 6 연수를 안 들었나 보다."


이 법은 1964년에 제정됐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만들어진 법이지만 난 이 법의 존재를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됐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리고 내 전 인생동안 미국은 법으로 나의 한국식 억양을 인정해 주고 보호해 줬는데, 나는 여태껏 내 한국억양을 부끄러워하기만 했다.


한국억양도 나의 일부다. 내 일부를 부인하고 부끄러워하며 영어를 잘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제대로 된 영어 발음을 공부하고 계속 연마하는 것은 좋지만, 나의 한국유산을 지우는 것은 영어를 아예 공부하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하다. 


구수한 된장냄새 나는 한국억양으로 영어를 말하고 바로 영어식으로 영어를 발음하는 방법이 그래서 더 효과적이다. 자신을 자신답게 인정해줘야 발전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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