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난 무척이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냥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어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 착각했기 때문이리라.
언니들은 말한다.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사는 네가 부럽다.
나는 나 자신이 부러운가?
난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 나를 한심스럽게 보지 않은 순간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순간들 뿐이다.
엄마는 말한다. 너는 어릴 적부터 니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부렀쓴께, 이제 와서 이래라저래라 말해도 아무 소용없다. 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부러.
못난 자식에게 하소연하고 결국에는 자식을 포기하는 푸념의 말이 아니다. 정말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두고 방목하셨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엄마 능력껏 뒤에서 밀어주셨다.
그래서 지금 거의 40이 되는 이 순간까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짓'을 하며 살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영어를 맛본 순간부터 소원했던 미국 유학생활도 했다.
공부 욕심에 미국에서 석사도 땄다.
석사 마친 후 다시 중학교에서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다 다시 한국의 모 대학교 박사 생활도 1년 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내 맘에 들지 않아 학교를 자퇴했다.
지금은 또다시 미국에서 박사과정 속에 살고 있다.
어떤 언니는 박사 해서 뭐할 거냐고 묻는다.
"너 박사 따면 학교에서 교감 교장 되냐?"
물론 안된다. 일단 중학교 영어교사에게 박사학위증은 아무 쓸모 데기 없다. 경제적으로 말이다.
엄청난 돈 주고 고생하며 기회비용만 천문학적인 박사학위증을 넌 왜 따고 싶은데?
그냥, 하고 싶으니까.
사실, 내가 박사학위를 딸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이제 2학기를 마쳤다. 학기가 새로 시작할 때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내 연구에 대한 막연한 근심과 걱정 때문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 들 정도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을 때, 그리고 그 두 개를 동시에 다 하지 못할 때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넌 무엇을 더 많이 하고 싶니?
박사 공부.
그래서 아직까지 난 공부 중이다.
나이 40이 다 되도록, 결혼도, 가족도, 아이도, 돈도, 명예도,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다.
나이 40이 다 되도록 나 하고 싶은 것만 닥치는 대로 하고 살아서.
너 자신이 부럽니?
아. 니.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서 좋니?
아. 니.
물론 40 남짓한 해동안 모든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 것은 아니다. 하기 싫은 일도 엄청하며 살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지겹고 힘들 때가 많다.
인생은 원래 암흑이란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기에 그렇다. 나의 미래가 암흑 속에 파묻혀있다면 나의 과거는 어떤 상태인가. 깊은 탄광 굴속에서 도끼질로 땅속에 파묻힌 돌을 깨서 밖으로 가지고 나온 흙이다. 금이나, 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값진 돌은 하나도 없이 그저 검은흙뿐이다. 이 흙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이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