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발음: 복식호흡 & 혀, 입술, 강세, 음절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1년 하고 반해를 재수하고 나서 임용이 되었다. 첫 발령지는 서울 북부에 있는 한 중학교. 당시 난 서울 사당동에 있는 남성에 살고 있었다. 사당까지 마을버스 타고 4호선을 타고 타고 타고 끝까지 타서 겨우 쌍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일 이렇게 고생하며 학교에 왔지만, 학교 수업은 매 순간이 지옥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큰 언니는 내가 교사가 됐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아니, 부끄럼을 그렇게 타는 애가 어떻게 교사를 하겠다고 하는지, 야 진짜 걱정되더라."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성격 때문에 난 매 시간 수업이 공포 그 자체였다. 매일 새벽까지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하고, 주말에도 수업 준비에 쉬는 틈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내 삶을 떠나고 싶었다. '제발... 내일 해가 뜨지 않았으면...' 그래도 태양은 어김없이 떴다. 난 내일 눈을 뜨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찌어찌하다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드디어 6개월간 공식적으로 학교를 떠날 수 있는 연수를 받게 되는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연수를 통해서 나는 치한 같은 원어민 선생님을 만났고, 그래서 영어 발음에 대한 내 굴욕의 수난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세금을 꼬박꼬박 내주신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올린다.)
연수에 강사로 참여했던 원어민 남자 선생님은 매우 젊었다. 얼굴도 잘 생겨서 여자 영어 선생님들(나도 포함)의 많은 호감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은 우리 보고 긴 책상 위에 올라가 누으라고 했다. 그리고 영어를 말하라고 한 후에 우리 배 주위를 만졌다.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하라고 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업 이후, 몇몇 선생님들이 수업방식에 불만을 토했다. 성희롱 같다고. 결국, 이 선생님은 이 수업을 그만둬야 했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이 잘생긴 원어민이 무엇을 목적으로 수업시간에 저런 치한 같은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선생이라는 자가 교육을 핑계로 학생들의 신체 일부를 만졌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분개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원어민이 왜 그렇게 했는지 쪼금 이해된다. 복식호흡을 하는 영어의 특성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이 누워서 무언가를 말하면 복식호흡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보고 다 누우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복식 호흡을 하면 배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배가 움직이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배를 만졌던 것이다. 한국말은 보통 복식 호흡을 하지 않지만,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복식호흡을 할 때가 있다. 바로 태권도하는 사람들이 기압을 넣을 때, 한쪽 콧방울을 막고 코를 '흥'하고 풀 때이다.
서양의 음악은 복식 호흡이 생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통 음악인 판소리는 목청에서 나는 소리다. 영어는 배 속에서 부터 나오는 호흡으로 하는 말이고, 한국어는 가슴 쪽에서 나오는 호흡으로 말하는 언어다. 영어는 목 안쪽 깊이 있는 곳에서 소리가 나오지만 한국말은 목 바깥 즉, 구강에 가까운 데서 소리가 난다. 팝송을 부르는 한국인들의 영어 발음이 다 좋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영어 발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영어식 호흡법을 통해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인지는 모른다. 내 생각!)
영어식 호흡법의 기초를 연습하려면 콧방귀를 잘 뀌면 된다.
'흐으응' 이런 콧방귀가 아니라 짧게 딱 끊어서 하는 콧방귀다. "흥! 흥! 흥!" 이런 식으로 알파벳을 읽어보라. 우리는 그동안 알파벳도 "에이~ 비~씨~디~" 이렇게 한국식으로 읽어왔다. 영어식으로 읽으려면 '에이! 비! 씨!' 식으로 콧방귀를 뀌듯이 읽어야 한다. 한국말은 소리를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호흡을 길게 내쉬면서 말하지만, 영어는 매 음절마다 악센트를 주면서 딱딱 끊어서 소리를 낸다. (음절이란, 모음 하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침'이란 단어는 2음절이다. '아'라는 모음 1개, '침'에서 '이'라는 모음 1개)
영어 원어민처럼 발음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왜 이런 식으로 발음하는지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런 식으로 발음을 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도 쉽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식 발음을 공부하다 보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내용은 분명 써먹을 데가 있다. 예를 들어, 우연히 만나게 된 영어 원어민과 이런 발음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수다 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과 이야기를 못하는 것은 영어를 못해서 라기보다는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서 이기도 하지 않는가?)
복식 호흡에 이어서 영어와 한국말의 발음 차이에 관한 중요한 것이 네 가지 더 있다.
첫째, 혀의 위치이다. 한국어는 보통 혀가 앞니를 많이 친다. 하지만, 영어는 몇 개의 발음을 제외하고는 닿지 않고, 앞니에서 좀 떨어져서 울퉁 튀어나오고 부들부들한 곳(치경)을 때리면서 말한다.
똑같은 한국말을 한 번은 평소 말하는 대로 말하고, 두 번째는 혀가 치경만을 닿도록 신경 쓰면서 말해봐라. 그럼 나도 모르게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할 때 내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입 모양이다. 영어는 말할 때 입을 위아래, 좌우 정말 큼직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한국어는 아주 조신하게 입을 움직인다.
나는 한국말을 할 때처럼 입술을 조신하게 놀려 영어를 발음해서 여러 번 개고생을 했다.
[i : ] 이렇게 생긴 영어 발음 기호는 보통 입을 양 옆으로 쫘~악 벌려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미국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는데 진땀을 뺐다. 나는 치즈를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치즈 빼고 햄버거를 달라고 했다. "No Cheese, please." 그런데 점원이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다. 계속 "Sorry? sorry?"만을 외쳐대는 그 미국인이 너무 얄미웠다. 나는 cheese를 말할 때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한국식대로 '치~즈~'라고 말한 것이다. (치! 즈!라고 콧방귀 뀌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영어식 발음은 입술 양 꼬리가 좌우로 확 벌어진다. 미국인들이 사진을 찍을 때 'cheese'라고 말하면서 찍는 이유는 바로 입술 양 꼬리가 확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이 되기 때문이다.
[i:] [ɪ] 이 두 발음은 한국 사람의 귀에는 다 똑같이 들리지만, 원어민들에게는 완전 다른 소리다. leave(떠나다)-live(살다)는 발음이 정말 다르다. 이 두 발음을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난 오랫동안 도대체 어떻게 다르게 발음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귀에 이 두 소리가 다른 점은 하나는 긴 소리고 하나는 짧은소리인 것 밖에 없었다. 백번 천 번 만 번을 들어도 원어민 발음 소리를 따라 할 수가 없었다. 해결 방법은 바로 입술 모양이었다(혀의 위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입술 모양이다). [i:]를 발음할 때는 입술 양 꼬리가 위로 올라가도록 하고, [ɪ]를 발음할 때는 한국말 '이'를 말할 때처럼 입술의 움직임을 하지 않으면 된다. 거울을 보면서 꼭 확인해라. '치즈'할 때 내 양 입꼬리가 위로 치켜드는지, 그저 일자로 멍 때리고 있는지를.
출처: https://youtu.be/n4NVPg2kHv4
입술을 잘못 놀려서 힘들었던 적이 또 있었다. 바로 나의 이름! 나의 이름은 진아다. 그런데 많은 영어 원어민들이 내 이름을 잘못 알아 들었다. 정말 4-5번 얘기해야 알아듣거나 아니면 스펠링을 불러 줘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냐면 영어 J를 정확하게 발음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어는 한글말 /ㅈ/이 없는 언어라고 보면 된다. 그럼 J를 어떻게 발음하냐고? 그건 바로 '쥐'다. '진아'라는 말과 '쥐나'라는 말을 할 때 입술 모양의 차이를 거울로 확인해 봐라. '쥐나'라고 할 때는 뽀뽀 입술이 된다. 영어 제이는 뽀뽀 입술을 하면서 말해야 하는 발음이었다. 그래서 제인 에어가 아니라 '죄인' 에어가 돼야지 영어 원어민들이 알아듣는 책 제목이 된다. 한국말 /ㅈ/ 발음을 제대로 못하는 영어 원어민에게 내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내 이름을 '쥐나?'라고 발음할 때마다 난 그저 조용히 웃어줄 뿐이다. '아니 나 쥐 안 나.'
세 번째는 강세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연수 중에 만난 또 다른 원어민 강사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이 강사는 우리를 빙 둘러 앉혀 놓고는 한 명씩 지목하면서 14를 영어로 발음하라고 했다. 한 명이 발음하면 그 선생님은 발음을 평가해줬다. Right 아니면 Wrong으로.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에 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나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Wrong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살다가 온 영어 선생님 한분만 빼고. 잘못된 발음을 했던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원어민 강사가 내는 발음을 듣고 앵무새처럼 따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강사는 다 됐다면서 연습을 멈췄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내 발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내 귀에는 다 똑같이 들렸으니까. 다만, 틀린 발음을 했고 원어민이 그것을 지적했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수치심과 자괴감만 들었다. 미국에서 살다온 그 선생님이 한없이 부러울 뿐이었다. 혹자는 그런다. 한국사람이 영어를 잘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이제 14를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엄청난 반복 연습 없이도! 그리고 미국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
영어로 14를 정확하게 발음하려면 강세를 알아야 한다. [ˌfɔːrˈtiːn] 이것은 14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발음 기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한국말은 음절 하나하나를 똑같은 강세로 발음한다. 하지만, 영어는 한 단어라도 강세가 있는 음절이 있고, 강세가 없는 음절이 있다. 한국말은 [폴틴]에서 '폴'과 '틴'을 똑같은 시간을 두며 발음한다. 하지만, 영어는 '폴'보다는 '틴'을 더 길게 발음한다. '틴'에 강세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 자음 발음은 의사소통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14를/ f/로 발음하던지 /p/로 발음하던지 강세만 잘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다. 하지만, 영어 모음 발음과 강세는 의사소통에 지장을 준다. 특히 강세 같은 경우는 심각하다. 강세가 있는 모음은 반드시 "약간 과장되게 길게~, 큰 소리로" 발음해 줘야 한다.
영어 원어민들은 표정이나 몸짓으로 강세를 표현해 준다. 미드나 미국 영화를 볼 때 그들의 얼굴 표정과 몸짓을 자세히 봐라. 대체로 강세를 표현해야 할 부분에서 눈썹을 위로 치켜든다던지, 고개를 까딱거린다던지, 큰 제스처를 한다던지 한다. 우리도 영어에 강세를 넣어서 말을 하게 되면 그런 식의 제스처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제부터 영어 원어민이 말하는 동영상을 볼 때 이런 얼굴 표정, 제스처 등을 잘 관찰해라. 강세를 줘야 하는 지점에서 이런 몸짓은 훨씬 더 커진다.
네 번째 음절이다. 드디어 나의 마지막 영어 발음 굴욕사를 공개할 시간이다. 대학 때 만났던 어떤 원어민 강사가 어느 날 난데없이 우리들에게 actually라는 단어를 발음하라고 했다. 아마 그 당시에 유명했던 영화 'Love Actually' 발음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잘못 발음하자 심기가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이 강사의 처방도 다른 여느 원어민 강사와 똑같았다. Repeat after me! 우린 앵무새처럼 그의 발음을 계속해서 듣고 따라 해야만 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발음이 왜 틀렸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발음을 고칠 수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음절을 잘못 발음한 것임을...
음절은 쉽게 말해서 영어 모음 하나를 의미한다. 모음이 하나가 있으면 그게 음절 한 개가 된다. 위 사진에서 ac와 tu 사이에 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한 음절과 음절 사이를 구분한 표시이다. 사실 네이버 영어사전을 자주 이용하면서도 이 단어 중간에 대체 왜 점이 있어야 하는지 고민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질문하지 않으면 영어는 그저 무조건 외우고 반복해야만 하는 나의 웬수가 된다.
그러니 앞으로는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해보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actually는 음절이 총 4개인 단어이다. 영어는 음절을 잘 구분해서 말해줘야 한다. 난 그냥 '액춸리! 액쉘리?'라고 발음했고 원어민은'액추얼리'이렇게 4음절로 발음했던 것이다.
'치즈'발음을 못했던 혼쭐 났던 이야기 기억하는가? 난 그날 입술 모양도 엉망이었고 음절도 엉망이었다. 한국말은 치즈가 2음절이지만 영어는 1음절이다.
발음기호 [ tʃiːz ]에 모음은 [i:] 이것 하나뿐이다. 그러므로 음절이 하나인 것이다. 맨 끝에 나는 [z] 발음은 성대를 울리면서 바람을 빼는 소리를 내줘야 한다. [z] 소리에 한국식으로 '으'라는 모음을 집어 넣으면 되면 이 단어는 2음절인 아주 요상한 단어가 되는 것이다.
긴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영어 발음은 복식 호흡과 콧방귀 소리에 기초를 두고 "혀입강음"에 주의해야 한다. 혀의 위치, 입술 모양, 강세 그리고 음절. 단어 하나하나를 말할 때마다 이 네 가지를 다 생각하라고? 그렇다. 처음엔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영어단어" 한 개씩 골라서 정확한 영어 발음을 연습해 보자. 하루에 한 개씩만!
5-6년 전 미국에 사는 남자 친구네에 놀러 갔다. 그 당시 계절학기 수업을 듣고 있던 남자 친구를 따라서 '한국어'수업을 한 시간 수강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교수님은 나를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었고, 한국말로 인사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약간 의아했지만, 교수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그냥 대충 내 소개를 했다. 짧은 소개가 끝나고 교수님 왈: "여러분 봤죠? 저 자신감 있는 한국어!" (물론 영어로 말하셨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자신감 있게 말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내가 한국말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발음에 대해 의식하지 않았고, 발음이 틀릴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어를 말할 때는 '틀리면 어떡하지?' '내 발음이 너무 구리면 어떡하지?'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 당연히 내 목소리에 자신감이 사라진다. 내 발음이 구려도, 내 문법이 엉망진창이어도 그것이 내 영어의 가치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예전에 남자 친구가 내 영어 발음을 못 알아 들었을 때는 엄청 자존심 상했고, 창피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요새는 남자 친구가 내 발음을 못 알아들을 때는 오히려 내가 화를 낸다. 그것도 못 알아듣냐고! 아이고 답답해!
그래도 가끔씩은 내 영어 발음의 결점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할 때도 있다. 이때는 반드시 내가 먼저 물어본다. (남자 친구가 먼저 고쳐주겠다고 할 때는 단번에 거절하고 삐친다.) 그래서 며칠 전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고쳐야 할 영어 발음이 뭐야?" (물론 영어로 물어봤다.) 그랬더니 영어로 말할 때 '남자'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웃을 때는 여자로 웃어서 나의 웃음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고 한다. 처음에 들을땐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했다. 내 목소리는 분명 한국말할 때나 영어 할 때나 다 똑같은 여자 목소리인데. 그래서 남자 친구에게 한국말로 지껄였다. 그랬더니 한국말은 여자 목소리란다. 여성 독자분들은 이 부분을 잘 유념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영어로 말할 때는 내가 여자임을 목소리에 확실히 티 나게 해 주시라. 약간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야 여자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난 애교를 잘 못 떤다. 나의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싶은 남자 친구의 술수 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본인이 잘 가려서 듣기로!
이렇듯, 영어 소리와 한국 소리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어떻게" "왜" 다른지를 모른 채 영어를 우리는 무조건 앵무새처럼 따라 하려고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앵무새가 되는 걸 포기하고 본인이 말하기에 익숙한 한국식으로 영어를 말한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처럼 진땀을 빼는 상황에 봉착한다. 자기 이름도 제대로 말 못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름에 /ㅈ/이 없는 사람들은 조상님께 감사기도를 올리시라. 앵무새 자질을 갖고 태어난 한국사람들은 이것저것 볼 것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듣고 따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피 속에는 앵무새 피가 없다. 그러니 앞으로 영어 발음을 공부할 때는 왜 발음이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말이 막 트인 어린아이들이 "엄마 저건 뭐야? 저건 왜 그래?"라는 질문을 융단 폭격하듯이, 이제 막 영어에 눈이 트인 우리들도 영어에 대한 집중 포격 사격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난 여기서 영어 원어민처럼 영어를 발음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여배우 윤여정처럼 발음해도 상관없다. 미나리의 감독이나 다른 배우들은 영어를 원어민처럼 했다. 윤여정은 그들의 영어에 절대 기죽지 않았다. 영어 원어민 발음으로 하는 이야기에 미국인들은 저런 폭소를 떠트려주지 않았다. 토속적인 한국말 같은 영어를 하는 윤여정의 영어에는 빵 하고 터졌다.
https://youtu.be/cARGkt6XLKM?t=13
진수 테리와 같이 한국인들의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 한국말을 해도 괜찮다. 영어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의미를 강하게 어필하자. 나의 발음이 된장 냄새 술술 나는 한국 악센트여도 상관없다. 그들은 내 발음을 듣기 위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 영어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나만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진수 테리는 영어를 못하는 것도 본인의 장점이라 했다. 그는 미국 토크쇼에 출연할 때는 보통 유명한 미국 토크쇼 진행자들보다 더 높은 금액의 출연료를 달라고 한단다. 그 이유는 첫째, 본인은 미국 사람이 아니며 한국인 특유의 악센트가 있다. 이 악센트는 자신만의 강한 악센트이다. 그렇기에 프리미엄을 받기에 마땅한 것이다. 둘째, 본인은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동양의 문화는 물론 서양의 문화까지 잘 알고 있다. 장점이 두배이니 출연료도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수 테리는 말한다.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잘 포장해야 한다고.
내 영어 약점이 실제로는 나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자.
약점을 나의 장점으로 볼 것인지, 약점으로 볼 것인지는 나의 결단에 달린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 내 영어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