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딛고 나아가야 했다.
요즘 도치(Doechii)의 Anxiety라는 곡을 자주 듣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고티예(Gotye)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와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가사를 보며 듣다 보니, 이 곡이 말하는 Anxiety, 그러니까 불안, 염려, 걱정이라는 감정이 너무 잘 이해가 되었다.
가사는 거칠고 강렬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을 얼마나 솔직하고 생생하게 표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다”와 “불안정하다”는 같은 말일까?
비슷한 듯했지만, 그 단어들이 담고 있는 무게는 조금씩 달랐다.
불안하다는 건 감정의 표출 같았고, 불안정하다는 건 삶의 어떤 상태 같았다.
그 차이에서, 나는 왜 이 단어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아마도 ‘안정’이라는 개념과 자꾸 비교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 삶의 당연한 전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결과, 익숙한 루틴, 예측 가능한 내일.
그런 삶이 옳다고 배워왔고, 그것이 성숙함이라고 여겨왔다.
그렇기에 불안정함은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흔들리는 마음, 결정하지 못하는 나날, 불확실한 내일.
그 모든 것들은 어쩌면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언가를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함 속에서도 나는, 나를 더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확신이 없기에 더 진지하게 고민했고,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자
수없이 흔들렸기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불안정함에 대한 생각을 하며, 나는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관련된 글과 영상들을 찾아보곤 했다.
그 안에는 불안정함을 아름답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들은 나에게 공감을 주면서도,
현실보다는 조금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불안정함의 부정적인 본질을 직시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시선들이 많았다.
나는 그 점을 존중하면서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어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불안정함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무게와 상태를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정함이 머물러야 할 공간이 아니라, 지나가야 할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순간은 분명 의미 있고, 때로는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지만,
그 상태에 머무르기만 해선 안 되고, 결국은 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도달한 안정은 언젠가 또 다른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고, 점점 다시 불안정함으로 덮여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방식을 찾아내려 할 것이다.
불안정함과 안정감을 통해 우리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려 한다.
그 안에서 내가 붙잡고 싶은 건,
바로 이 흔들림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불안정함의 아름다움
그것은 나 자신의 불안정함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조금씩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지 않은, 그 안에 머물던 시간과 흔들림.
그것들조차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이 생긴다면
완성된 모습 뒤에 감춰졌던, 부정적으로만 여겨졌던 그 불안정함을 우리는 마침내,
아름다움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