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함의 역설

내가 하는 일이 멋지진 않네요, 그렇다고 부끄럽지도 않네요.

by 김재운

“먼저 들어가 볼게요~!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어, 들어가~ 고생했어.”


바닷물 속에서 나오며 이른 아침 시작한 오늘 나의 하루는, 이른 오후에 끝났다.

텅 빈 몸으로 버스에 올라 창가에 앉는다.


‘죽겠네…’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느새 늘 그렇듯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맨날 저렇게 일하지… 대단하다. 멋있다.’


창밖을 보는 시선 너머로, 각자의 시간에,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각자 다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바톤을 주고받으며, 세상은 눈을 감지 않는다.


누군가는 해가 뜨기 전 어둠 속을 달리고,

누군가는 해가 지고 나서야 비로소 몸을 일으킨다.


사람마다 삶의 박자는 다르다.

누군가의 시작은 누군가의 끝이고,

누군가의 중간일 수 있다.


그 차이를 존중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유연해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최근 나는 ‘귀천’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


“너가 부끄러운 건 아닌데, 좋은 것도 아니잖아.

왜 그 시간대에 굳이 일하겠어?

그냥 안정적인 일도 있잖아. 그건 왜 안 하려는 건데?”


“…나는 내가 하는 걸 부끄러워한 적 없어.

그리고 창피해서 밤늦게 일하는 거 아니거든?

그 시간대가 제일 적절해서 그런 거야.

그리고, 그건 왜 안정적인 건데?

지금은 그거보단 이게 나아.

그만 얘기하자.”



속상했다.

분명 남들보다 하루를 더 일찍 일어나고, 더 오래 버텼다.

수입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왜, 그 시선은 항상 아래를 향하는 걸까.


부끄럽다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를 향한 시선은 분명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그 말이 맞다고 믿어왔지만,

정작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귀천이 없다는 말은

정작 그 시선 아래 있는 사람들의 방어일지도 모른다.

나조차 이 말을 할 때마다,

진심이 아니라 변명처럼 들릴까 봐 불안할 때가 있다.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반말이 섞이고,

누군가의 손에 들린 도구 하나로

그 사람의 수준까지 짐작하려 드는 사람들도 있다.


더 벌고, 더 높고, 더 편한 일은

더 나은 삶이라 여겨지고,

그 아래에 있는 수많은 일들은

‘그저 그런’ 일로 치부된다.


“ 그래, 그토록 ‘그저 그런 일, 천한 일’이라 불리는 그것들은천한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인데... ”


가운을 입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법복을 입고 정의를 바로잡는 판사.


분명 빛나는 자리에 있고,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들이다.

그 자리까지 닿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조끼를 입고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미화원,

우비를 입고 손이 마를 날 없는 바다를 지키는 어부.


그들은 화려하지 않다.

허나 묵묵히 일상을 책임지는 그들을

정말 ‘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매일같이 밥상에서 마주하는

쌀 한 톨을 키워낸 두 손을 두고서 말이다.


정작 그런 판단을 하는 사람들조차

그 ‘천한 일’의 결과물을 매일같이 소비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가치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게, 가치의 착각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자주 생각한다.

어떤 일이 좋은 직업일까.

어떤 일을 해야,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돈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명예를, 혹은 안정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지위와 안정성,

그것들을 부정하진 않는다.


좋은 직업? 이렇다 하기 어렵다.

멋있는 직업? 떠오르는 건 많지만,

천한 직업?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천한 일은 없다고.

그 믿음을 붙잡고,

나를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다짐한다.


그치만 누군가 내게

“직업에 정말 귀천이 없냐”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말할 것 같다.


내가 그 권력을 쥐어보고, 명성을 누리고,

그 위치까지 가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저 그런 일’들이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닌 매장.

어두운 매장에 들어서며 생각한다.


‘죽겠네…’


그럼에도 이젠, 기름을 묻힐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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