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간암 누나 간병일기
다행히 2번째 응급실을 다녀온 뒤로는 딱히 열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기적으로 열을 측정했고, 소화가 잘 안 되어 약을 한 번에 먹지 못하는 누나를 위해 무슨 약을 언제 먹었는지 하나씩 기록했었다. 먹기 너무 힘들면 일부 약은 포기 해야 했지만, 최소한 간염 항바이러스제만은 꼭 먹게 했다.
암은 개인에게도 너무나 힘든 고통이었지만, 가족에게도,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지금은 치료비의 5%만 내는 산정특례 덕분에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나가는 돈이 만만하진 않았다. 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보건소 지원 정책이나, 건강보험공단에서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정책을 받을 수 있는듯했다.
엄마는 나보고 매번 알아보라고 말했었지만, 누나는 엄마가 10년 전에 티비에서 보고 들어 놓은 손해보험 덕분에, 대부분 보험처리가 되었다. 그래서 보건소나 건강보험공단 지원을 알아봐도 해당되는 사항이 없었다. 누나의 보험은 1억 한도인데, 한도를 다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나는 늘 집이 춥다고, 엄마보고 환기 때문에 창문을 여는 것 좀 그만하라고 늘 짜증 냈다. 엄마는 뒤늦게나마 변해서 다행이었고. 그럼에도 누나는 많이 추웠는지, 내복을 입고, 이불을 덮고 있었고, 어느 때는 모자도 쓰고 있었다.
어느 날은 누나가 마음에 드는 모자를 샀다며 보여주는데, 미용실도 간지 오래라 누나의 머리는 어느새 중단발로 길어있었다. 머리가 길어지니 머리를 감는 주기도 길어졌고, 엄마가 머리 감는 것을 도와주는데 둘이 매번 싸웠다. 아무래도 엄마는 좀 투박한 편이고, 누나는 지나치게 섬세한 편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에는 내가 머리 말려주는 것만 도왔었는데, 엄마랑 싸운 이후부터는 내가 감는 것부터 도와줬다. 다행히 누나는 내 손길은 괜찮았는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누나를 위해 물 온도를 맞추고, 머리에 오일도 발라주고, 말려주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처음 누나의 머리를 말릴 때는 두피를 말리지 않고 머리카락만 말린다고 엄청 혼났었다. 어떨 때는 드라이기 바람이 뜨겁고, 거리를 띄우니까 바람이 안 오고 그랬었고. 그러면서 누나는 여자 머리를 말려줄 일이 없었을 텐데, 자신 때문에 괜한 일을 하면서 혼난다며 미안해했다.
저번에 주문했던 맨투맨 티셔츠가 도착했고,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나와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힘들기도 하고, 날씨가 무척 추워서 밖을 나가지 못하는 누나를 위해, 명동에 갔을 때 신세계 백화점에서 했던 조명 이벤트를 하길래 찍어왔었다.
첫 번째 항암제를 투여한 지 28일이 지나니, 정말 신기하게도 누나의 상태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항암치료는 살만하면 다시 반복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누나는 점점 입맛이 도는지 밤에 배가 고프다며 두유도 먹고, 주스도 먹고 그랬다. 이때는 정말 기분이 좋더라.
누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깨 통증도 훨씬 덜 해졌고. 2차 항암 전 외래에서, 누나랑 엄마랑 지하 식당 가서 밥을 먹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누나는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를 알기에, 이제는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뒤에, 하루의 끝자락에 교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항암제가 잘 받아서 열이 많이 났던 것으로 판단했었고, 다행히 결과가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2차 항암은 교수의 휴가가 겹쳐서, 꽤나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어떤 사람은 항암치료 기간 동안 휴약기가 길면 안 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휴약기간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적어놨더라. 나는 개인적으로 백혈구 수치만 넘으면 무조건 항암치료를 진행하는, 그런 힘든 과정은 겪지 않길 바랐다. 차라리 누나가 그동안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체력을 보충했음 싶었다.
누나는 많이 회복해서 간식도 종종 먹었고, 편하게 바닥에 앉기 위해 등이 폭신폭신한 의자도 샀다. 앉아서 뭐라도 할 수 있도록 가벼운 간이 책상도 하나 구입했고. 누나가 텐트 밖으로 나와있는 동안에는 누나가 심심할까 봐 노트북으로 같이 유튜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누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들어가라고 말했지만, 내심 같이 있길 바라는 눈치였다. 나도 해야 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누나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대신 아예 놓은 건 아니고, 짬이 날 때마다 조금씩 하는 것뿐이었다.
누나는 항암제 때문에 잇몸이 점점 약해져서 그런지, 부드러운 칫솔을 원했다. 치약도 시중의 치약은 너무 강해서 조금 약한 치약을 원했고. 이것저것 찾아보니 생각보다 암 환자를 위한 제품들이 다양했고, 생각보다 비쌌다. 다 검증은 받고 파는 걸까..
그리고 누나는 단 걸 먹고 싶은데, 암세포가 당을 먹고 커진다는 말에 주저했다. 많이 괜찮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속이 역해서 레몬 사탕을 먹고 싶어 했었고, 그동안 못 먹은 과자도 그렇고. 그런데 나는 누나보고 그냥 먹고 싶으면, 다 먹으라고 했다.
지금 누나는 뭐라도 먹어서 살을 찌울 시기이고, 병원에서도 튀김종류만 제외하면 그냥 먹으라고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금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치료보다는 연장에 가까웠으니까.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 결국 후회만 남을 테니까.
이때 나는 유튜브로도 간암에 대해 정말 많이 찾아봤었다. 암 브이로그가 정말 많았고, 정말 속상했던 것은 채브이로그 채널의 주인들은 결국 모두 마지막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 영상을 올리는 유병장수girl님이 계셨고, 누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유병장수girl님을 부러워했다.
1. 항암치료란 무엇인가 (김범석)
2.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김여환)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험담도 중요했지만, 전문적인 지식도 필요해서 각 병원에서 올려놓은 간암 관련 세미나도 자주 보곤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의료인이 아니라서 지식을 흡수하기는 매우 어려웠고, 매번 좌절했지만 그렇다고 놓을 수는 없었다. 이때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책이 있었다.
항암치료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놓은 책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읽고 난 후에, 일말의 기대감은 점점 옅어졌다.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은 호스피스 의사가 겪은 환자들의 에피소드이며, 나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보호자라는 같잖은 이유로 누나의 의견을 절대 무시하지 말자. 이 교훈은 지금까지도 내가 그나마 후회를 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정말 감사한 교훈이었다. 하지만 나만 공부해서는 소용없었다. 부모님은 누나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줬지만, 당신들의 의견은 크게 굽히진 않았었으니.
밖을 보는데 첫눈이 오길래, 영상을 찍어서 누나를 보여줬다. 그래도 이렇게 같이 첫눈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년에도 같이 첫눈을 보면 좋을 텐데.. 새해가 시작되는 날에는 같이 영상도 찍었다. 얼른 괜찮아져서 누나가 좋아하는 수박도, 참외도 많이 먹자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