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흔들리고, 공감 가치 시대

알고리즘은 '진리'가 아니라 '정서 반응'을 우선한다.

by 불씨

공감은 흐름을 만들고, 진리는 방향을 만든다.

격물치지는 사물의 원리를 끝까지 탐구해 지식을 확장한다는 뜻이다.

오늘식으로 해석하면 관찰 → 분석 → 개념화 → 진리 발견과정이다.

공감은 타인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내적 감정 모델을 구축하는 능력이다.

이는 정보 분석이라기보다 감정·맥락·관계의 신호를 읽는 능력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우리는 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이 참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묻습니다. “누가 상처받았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를 해체했다. 권위는 믿기 어렵고, 지식은 권력과 뒤엉켜 있으며,

객관성이라는 말은 언제든 문화적 편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노출되었다.

한때 절대적 기준처럼 보이던 “진리”는이제 개별 경험과 서사 속에서 상대성을 떠안은 채 흔들린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 공감이다. 진리가 흔들리는 시대에 사람들은 더 이상

“누가 옳은가?”로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누가 아픈가?”를 판단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정서적 이해는 논증을 대체하고, 상대의 사정을 들어주는 능력이 지적 설득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공감은 새로운 사회적 중심이 되었고, 공감력은 시대적 덕목이 되었다.


알고리즘은 '진리'가 아니라 '정서 반응'을 우선한다.

이 변화는 철학의 영역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유튜브의 알고리즘과 보상 시스템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단 한 가지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사용자가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 이 체류 시간을 결정하는 건 논리·사실·진리보다 "정서적 자극"이다. 분노, 위로, 감동, 동의, 불안, 공감, 웃음. 즉,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콘텐츠가 알고리즘의 최상단에 위치한다. 진실한가? 근거가 있는가? 이런 질문은 알고리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보상 시스템 역시 '공감의 힘'을 극대화한다. 유튜브의 보상은 단순하다. 시청 시간, 댓글 수, 좋아요, 공유, 시청 지속률. 이 지표들은 모두 "정서적 참여"를 측정하는 장치다. 결국 플랫폼은 감정적 공명을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보상을 지급한다. 논리적 정확성보다 감정적 파급력이 생산자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메아리방 안에서 위로는 증폭되지만, 동시에 왜곡된다.

"당신이 옳다"는 메시지가 "오직 당신만 옳다"로 변질되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지만, 그 대가로 인지적 다양성을 제거한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위로받지만 고립되고, 확신하지만 편협해진다. 사용자는 점점 더 좁은 정보 생태계 안에 갇히면서도, 그것이 전체 세계라고 착각하게 된다. 위로가 세계를 축소시키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메아리방 효과는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공감은 인간을 구하지만, 방향을 만들지는 않는다

공감이 사회적 필요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양성이 극대화되고, 권위가 붕괴되고, 개인의 경험이 분화된 시대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공감은 필수적인 공동 언어다.

하지만 공감은 '현재'를 안정시킬 뿐, '미래'를 설계하지는 못한다. 유튜브가 보여주듯, 공감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은 감정 흐름을 잘 운영하지만 지식의 구조를 세우지는 못한다. 따뜻함은 위로가 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위로는 휴식이지만, 진로는 전략이다.


진리와 공감의 균형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지금의 시대는 공감이 지나치게 우위에 있다. 감정의 진동이 커질수록 사실 검증은 뒤로 밀린다. 공감 능력은 높아졌지만, 판단 능력은 약화되는 모순이 생긴다. 데이터의 바다에서 살면서 정작 그 데이터를 읽는 힘은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러한 시대의 긴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공감은 흐름을 만들고, 진리는 방향을 만든다. 흐름만 있고 방향이 없으면, 시대는 움직이지만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철학의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공감의 시대에 다시 진리의 역할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 단일한 진리의 폭력성을 경계하면서도,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판단의 골격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 '진리를 해체'했다면, 이제 우리의 과제는 공감의 시대에 합당한 새로운 진리 개념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피해가는 개인에게도, 감정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에게도 가장 절실한 철학적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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