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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Feb 06. 2023

정월대보름날의 추억 / 정월대보름의 유래와 전설

삶의 단상 

정월대보름이 예전 같지가 않다.


어머님이 살아계셨을 때 어머님을 차례상을 차리는 것처럼 보름 음식을 준비하셨다.



아니 명절 때보다 더 많은 음식을 장만하셨던 거 같다.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나물이 삼색나물에 불과했다면


정월 대보름날에는 상에 올리는 나물이 한 손가락으로 미처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사진 출처 / 안동 종가음식 체험관


보름의 추억


생각나는 것만 무나물, 콩나물, 아주까리나물, 묵나물, 가지나물, 호박 우리, 명아주나물 등이다. 거기에 두부 전을 올리고 김도 한 뼘도 넘게 놓고 오곡밥에 쇠고기 뭇국 대신 돼지고기 뭇국이 있었다.


어제 양천구 정월대보름 민속행사에 다녀온 뒤라 옛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보름 전날,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보다 어린 우리가 더 바빴는데, 보름 전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렇고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면 눈썹을 희게 색칠해 놓아 아침에 일어나 큰 소리로 울었던 기억이 있다.



보름날 이른 새벽에는 복조리 장사가 돌아다니며 복조리를 팔았다.


집집마다 복이 들어오기를 바라며 복조리를 한 쌍씩 샀고, 복조리는 안방 입구에 그다음 해 정월대보름까지 매달아 놓았다.


보름날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더위를 팔러 다녔다.


더위를 판다는 것이 이런 식이다.


'00야! "


누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대답을 하면 이름을 부른 사람에게 내가 더위를 샀다는 뜻이다. 부름에 대답을 한 사람은 더위를 샀다며 애석해했고, 이름을 부른 사람은 더위를 팔았다며 좋아했었다.


아이들이 무리 지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렇게 이름을 부르며 놀이를 즐겼고,



그런 다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집에 들어가 오곡밥과 각종 나물과 부럼 등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어른들은 지신을 밟는다며 풍물놀이를 하며 온 동네를 돌았고, 아이들은 논과 들에서 연을 날리고 팽이를 치며 놀았다.


저녁이 되기 전 쥐불놀이를 하기 위해 깡통을 준비해 못이나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기다란 철사로 끈을 만들어 밤이 되어 둥근 정월대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려 불을 붙은 나무를 깡통에 넣고 빙빙 돌리며 쥐불놀이를 하고,


그림 / 이서지


달집을 태우며 이웃 마을과 돌팔매질을 하며 싸움을 하기도 했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어린 우리들에게 보름이 명절보다 더 명절 같았고, 축제 같았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작은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보름인데 그냥 넘기기 뭐 해서 찰밥을 지어놓았으니 같이 점심을 먹잔다. 그렇지 않아도 아쉽던 차여서 언니네 집으로 갔다.


언니는 나이가 들어 이제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 했다고 했지만, 그래도 오곡밥에 나물도 여러 가지 있다.


토란대와 콩나물



취나물과 아주까리 나물,


내가 좋아하는 들기름에 볶은 무청 시래기나물도 있다.



엄마를 닮아서 부지런한 언니는 음식 솜씨가 좋다.


조금씩 덜어 언니와 둘이 식탁에 앉아 기억 속 가물거리는 보름날 이야기를 물어본다.



추억을 반찬 삼아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정월대보름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큰 명절이 되었을까?

사진 / 양천문화원


정월 대보름 전설


그 기원은 삼국유사 기이 제1편 소지왕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신라 소지왕 때 일이다.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으로 행차하기 위해 궁을 나서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러더니 쥐가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쥐가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인지라 임금은 신하에게 까마귀를 따라가 보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따라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까마귀를 따르던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다 그만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다.


황망하여 어쩔 줄 모르는 신하 앞에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와 편지 봉투를 주면서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신하가 궁으로 돌아와 임금에게 편지와 함께 연못에서 노인이 한 말을 전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일관이 말했다.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일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이 편지를 꺼내서 읽어 보았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시오)'


임금은 활을 당겨 거문고 갑을 쏜 다음 뚜껑을 열어 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왕비와 어떤 중으로, 중이 왕비와 짜고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다.


그 뒤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부르고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이 찰밥이 발전해 약밥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까마귀뿐 아니라 쥐와 돼지도 임금에도 도움을 줬는데 왜 까마귀만 챙기는가 하는 점인데, 그것은 쥐와 돼지는 12 지신에서 처음과 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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