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탄생화
나는 여름의 끝자락, 고요한 물가에서 자줏빛으로 피어납니다. 아침 햇살이 잔잔히 내려앉으면 물 위로 비친 내 그림자가 바람 따라 흔들립니다. 논두렁과 개천, 연못가의 젖은 흙을 좋아하는 나는 비 온 뒤 더욱 빛나지요.
아득한 옛날, 백중날의 이야기 속에도 내가 있습니다. 불심 깊은 한 사람이 부처님께 연꽃을 바치고자 연못을 찾았지만, 전날 내린 큰비로 연못 물이 불어나 연꽃을 딸 수 없었다고 하지요. 속이 상한 채 울고 있던 그에게 백발의 노인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네 마음이 참으로 깊구나. 연꽃 대신 저 자줏빛 꽃을 올려라.”
그가 내 모습을 부처님 전에 바쳤을 때, 많은 이들이 감탄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부처님께 드린 꽃, 부처꽃이라 불렀습니다.
나의 꽃말은 사랑, 깨끗한 마음, 그리고 슬픔을 이긴 사랑. 한여름을 지나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도 나는 꿋꿋이 피어 있습니다. 마음을 씻어내는 듯한 고요함과, 슬픔을 견딘 이들이 지닌 강인함을 닮았다고들 하네요.
먼 바다 건너 영국에서도 나는 다른 이름으로 노래되었습니다. 시인 존 클레어는 나를 long purples라 부르며 습지의 고요한 풍경을 시에 담았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도 내 이름이 등장해, 물가를 물들이는 보랏빛 꽃으로 자연의 덧없음을 상징했지요. 19세기 식물 세밀화가들의 화폭에도, 현대 풍경화와 추상화의 붓끝에도 내 빛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물가의 바람과 함께 숨 쉬며, 세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하는 존재로 피어나 왔습니다. 당신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내 자줏빛 군락을 바라본다면, 그 속에서 오래된 전설의 온기와 시인들의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부처님께 드린 그 마음을 품고 피어납니다.
https://youtu.be/C0xDmm1K40Q?si=5gvuHc5rzoq5fV-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