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이야기
학명 Cotinus coggygria Scop.
영명 Smoke Tree / Smoke Bush
꽃말 지혜, 현명, 평온
처음 나를 본 사람들은 종종 놀란다. “저 나무에 불이 붙은 건가요?” 그러나 그것은 불이 아니다. 꽃이 진 뒤 길게 뻗은 꽃대마다 부드러운 털이 햇살을 머금고, 그 빛 속에서 나는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안개나무’, 혹은 ‘스모크트리(Smoke Tree)’라 부른다.
나는 옻나무과에 속하지만 옻처럼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그 대신 세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워버린다. 불과 물, 현실과 환상, 빛과 그림자의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흐릿하게 존재한다.
봄에는 연둣빛, 여름에는 황록빛, 가을에는 붉은빛과 자주빛이 뒤섞이며 나는 계절마다 다른 얼굴로 세상을 물들인다.
그중에서도 ‘자엽안개나무(Royal Purple Smoke Tree)’는 햇살 아래에서 가장 강렬하게 빛나는 품종이다. 잎은 짙은 자줏빛으로 물들고, 바람에 스칠 때마다 부드러운 연무가 피어오른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고요한 정열과 품위, 그리고 지혜를 떠올린다. 나는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속에서는 천천히 타오르는 불빛이 된다.
나는 화려한 꽃 대신 사라짐으로 아름다움을 남긴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사라지는 순간조차 삶의 일부가 되어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오를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나의 꽃말은 ‘현명’과 ‘평온’이다. 빛을 받아 흩어지지 않아도, 눈부시게 피어나지 않아도, 나는 제 자리에 서서 바람과 시간을 배운다. 진짜 지혜란 단단함보다 부드러움 속에, 영원함보다 사라짐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옛사람들은 나를 ‘현자의 나무’라 불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어느 산속 현자가 나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불처럼 타오르지도, 얼음처럼 식지도 않으니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나무다.” 그 말 이후로 나는 한결같이 바람을 맞으며 그 뜻을 새겨왔다.
내 껍질과 잎에는 타닌, 플라보노이드, 피세틴 같은 물질이 들어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성분들이다. 유럽에서는 예로부터 나를 상처의 약재로, 잇몸을 헹구는 가글로, 피부를 닦는 세정제로 사용했다. 지혜로운 식물은 스스로의 치유법을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은 욕심 없는 손에서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예술가들도 나를 사랑했다. 게인즈버러는 나의 연기 같은 자태 속에서 빛과 공기의 경계를 그렸고, 프랑스 조형작가 베르나르 프로스트는 나의 가지로 ‘연기의 조각’을 만들었다.
그들은 말했다. “안개나무는 형태를 지우며 존재를 드러낸다.” 그 말은 나의 존재를 가장 잘 설명한다. 보이지 않음 속에 남는 흔적, 사라짐 속에 드러나는 존재,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오늘도 바람 속에서 연기를 피운다. 뜨겁지 않게, 그러나 따뜻하게. 빛으로 타오르되 누구도 해치지 않게. 그것이 나의 현명함이며,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마지막 지혜다. 나는 안개나무다. 안개처럼 피어나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나무다.
https://youtu.be/tD7BXdHRdvs?si=Q9KuIFkxwyBVDYf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