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공작초(Aster) – 별의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
가을의 문턱에서부터 늦가을까지, 들판과 화단에는 하얀 별빛 같은 꽃이 피어납니다. 그 꽃이 바로 공작초입니다. 흰색 혹은 보랏빛 꽃송이가 모여 피면 마치 공작이 꼬리를 활짝 펼친 듯 우아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수수하지만 단아하고, 단아하면서도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지닌 꽃입니다.
공작초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주로 북아메리카 원산이며 우리나라에는 귀화식물로 들어와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자생합니다. 줄기는 약 1미터 정도로 자라고, 가늘게 갈라진 가지마다 들국화처럼 작고 단정한 꽃이 빼곡히 달립니다. 흰색의 설상화가 바깥을 감싸고, 가운데의 통상화는 노랗게 빛납니다. 멀리서 보면 하얀 별무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합니다.
학명은 Symphyotrichum pilosum, 이전에는 Aster pilosus로 불렸습니다. ‘Aster’는 그리스어로 ‘별’을 뜻하며, 이 이름에는 하늘과 연결된 오랜 신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밤하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Astraea)가 등장합니다. 인간 세상의 죄악을 슬퍼한 여신은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고, 그녀가 흘린 눈물이 땅에 떨어져 별처럼 빛나는 꽃으로 피어났다고 합니다. 그 꽃이 바로 공작초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공작초를 ‘별의 눈물’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꽃말 또한 이 전설의 여운을 품고 있습니다. 첫눈에 반함, 화해, 상상력, 변치 않는 사랑, 그리고 좋은 기분. 어느 하나도 가볍지 않은 의미들입니다. 가을 하늘처럼 투명한 빛을 머금은 꽃잎은 ‘첫눈에 반한 사랑’을, 늦가을까지 꿋꿋이 피어 있는 생명력은 ‘영원한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작은 별 모양의 형태는 사람들에게 화해와 안부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래서 공작초는 마음이 멀어진 이에게 건네기 좋은 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공작초는 예술 속에서도 자주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스어 이름이 ‘별’이라는 뜻인 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생의 덧없음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자연의 순환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에서는 공작초가 가을의 끝자락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국화나 백합, 장미와 함께 그려진 공작초는 피고 지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인생의 무상함(Vanitas)을 암시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식물 삽화가 활발히 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공작초의 다양한 품종과 섬세한 형태는 과학적 기록의 대상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얇은 줄기와 별 모양의 꽃잎, 부드러운 색감은 식물화가들의 붓끝에서 정교하게 재현되었고, 그 삽화들은 오늘날에도 미술관과 도서관에서 귀중한 예술 자료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은 공작초나 데이지와 비슷한 작은 국화과 꽃들을 즐겨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 속 꽃들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를 여는 열쇠로 사용되었습니다. 공작초의 꽃말 중 하나인 ‘상상력’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르동의 세계와도 닮아 있습니다.
동양에서도 공작초는 국화과 들꽃의 일부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초충도(草蟲圖)에서는 풀과 곤충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 야생 국화류가 그려지곤 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오늘날의 공작초와 형태가 매우 흡사합니다. 신사임당의 화훼초충도에도 그와 비슷한 들꽃이 보입니다. 동양화 속의 공작초는 화려하지 않지만 생명력과 소박한 길상을 상징하며,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표현했습니다.
현대 예술에서도 공작초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탄생화 디자인이나 수채화 일러스트, 타투 도안 등에서 9월의 탄생화로 자주 등장하며, ‘존경’과 ‘인내’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20세기 초반의 아르 데코(Art Deco) 양식에서는 공작초처럼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꽃 형태가 포스터나 직물 디자인에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현대의 공공 미술에서도 공작초를 비롯한 국화과 꽃이 생명력과 친근함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거대한 꽃 조형물 속에도 어쩌면 공작초의 선형적인 아름다움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꽃을 보면 늘 ‘겸손한 별빛’이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오래 남는 빛. 그 빛은 어느 화가의 캔버스 위에도, 오래된 삽화의 종이에도, 그리고 지금 내 기억 속 가을 화단에도 여전히 반짝이고 있습니다.
공작초는 단순한 가을의 들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노래하는 예술의 언어였습니다. 별의 이름을 가진 꽃, 그 이름처럼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오래도록 빛나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XxkJyXRYTtc?si=-0qQOBZ6bDT0KzO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