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살펴보는
‘음악의 가치와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내가 음악학을 하겠다고 결심한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해오면서 내 안에 항상 떠나지 않는 질문이 바로 이 질문, 즉 ‘음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인간은 왜 음악을 하는지, 음악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품어져 온 것이었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다양한 답들도 제시되어왔다. 나 또한 매일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곤 하는데, 하지만 이것들에 대해 언제나 명확히 답을 내리지 못하곤 한다. 도대체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음악을 하기 시작했을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음악을 아는 걸까. 인간에게 음악이라는 존재의 가치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해왔는데, 최근 내 안에 비교적 명확해진 것이 있다.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인간과 세상은 그 창조주가 만든, 창조주를 닮은 피조물이라고 믿는다. 창조주를 믿는 사람으로서, 피조물인 내가 요즘 깨달아가고 있는 것은 첫째로, 나는 결코, 절대로 이 세상의 본질에 대해서 또는 음악의 본질에 대해서 백 퍼센트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며, 둘째로, 완전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세상의 창조주가 만든 것이어서 창조주를 닮은 피조물인 우리에게 음악은 자연스럽게 주어지고 추구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다소 종교적인 접근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세계관 속에서 나는 음악을 이렇게 생각한다.
첫 번째 깨달음에 대한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어떤 학문이나 지식으로 이 세상과 음악의 본질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곤 했다. 하지만, 더 많이 배워가면 배워갈수록 본질에 대한 목마름만 깊어져 갈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온 학자 ‘파우스트’처럼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이라는 우리 존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세상의 본질에 대해 어떠한 완전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을 만든 창조주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음악의 본질에 대해서도 인간인 나는 어떤 완전한 이해를 할 수 없다.
이것을 전제하고 두 번째 깨달음으로 넘어가 보면, 성경에서는 창조주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보시기에 ‘아름답게’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이 창조주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 창조물들은 만든 이의 성품과 특성을 닮을 수밖에 없고, 아름답게 지어졌다. 따라서, 인간과 음악은 창조주의 성품과 특성을 닮았으며, 아름답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피조물인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데, 그것이 ‘아름다운 창조물인 음악’을 추구하는 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인지 없이 음악을 향유하고 추구하는데, 이는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창조주의 성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왜 음악을 추구하는가’에 대한 많은 철학적 논의가 있어왔지만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인간 밖의 범주의 이야기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세상’ 또는 ‘우주’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처럼 음악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태초부터 신으로부터 온 것이며, 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였기에 음악을 창조하고 추구하였으며, 그러한 창조주를 닮아 피조물인 인간도 음악을 추구하고 향유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음악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나는 음악에 있어서 ‘생명’과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보면 창조주의 가장 중요한 성품 중 하나가 사랑이며, 또한 그에게 생명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 성품을 가진 분으로부터 온 ‘음악’의 본질적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이 두 가지가 떠오른다. 그에 따라 나는 세상과 인간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음악이란 어떠한 하나의 장르 또는 스타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특정 지을 수는 없으나, 들었을 때 정서적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위로를 주고, 인간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즉,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서 음악을 이해한다고 해서 음악이 항상 종교적인 내용이나 경건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삶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 및 공유하는 창작 행위는 창조주의 창조 본성을 닮은 것이기에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들의 이야기와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모두 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들었을 때 생명력과는 반대되는 우울함에 한없이 빠지게 하거나, 파괴욕을 자극하거나, 지나치게 감각적인 자극만을 일으키는 음악들은, 그 창작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창의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겠지만, 가치 판단이나 음악 향유에 있어 조금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