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시 16
가죽지갑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명함에 적힌 글귀들이
명징한 삶의 비석이라 믿는 이들
번드르르한 티비에서 흘러나온
평정의 정치엔 할 말이 많지만
평수의 전시장엔 슬며시 주눅 드는 이들
오롯한 삶이라는 전쟁에서
배수진을 쳐 본 적도, 칠 생각도 못했지만
배기량에는 자꾸 눈길이 가는 이들
이승의 삶을 정리하는
심판대 같은 게 정말 있다면
이들의 죄목은
이율배반이 아닐는지
어느 거리에서든 불특정 한 사람들에게 내가 불린다면 가장 적절한 호칭은 ‘아저씨’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나는 ‘아저씨’들이 무섭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저씨’들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어울리지 않기 시작한 게. 그래, 생각났다. 들개들처럼 무리 지어 다니는 아저씨들, 건달들처럼 건들거리는 아저씨들, 밤이면 게슴츠레 눈이 풀린 채 그 민망한 배를 앞세우고 다니는 아저씨들, 낯선 이들을 만나면 나이로든 직함으로든 소유로든 기어코 서열 매기기에 애를 쓰는 아저씨들, 그 아저씨들이 자주 눈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아, 한 가지를 놓칠 뻔했다. 언제나 ‘사실’이라는 작은 쌀알을 뻥~! 튀겨 과장하며 주눅을 미리 방어하는 아저씨들.
벌써 수년 전에 겪은 일이다. 이끌고 있던 공부모임 <예기치못한기쁨>의 토론자리에서 청년들이 귀띔해 주었던 유행어, ‘개저씨’는 흐릿하던 예감과 불안의 커튼을 찢어 진실의 햇볕을 맞닥뜨리게 해 주었다. 도무지, 파고들어 반박할 틈이 없어서 다만, '우리 모두 경계하자'는 말로 서둘러 갈음했다.
순한 양처럼 다소곳하게 홀로 있는 법을 도무지 모르는 이들, 시선을 먼데 두고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우아하게 허리를 곧추 세울 줄 모르는 이들, 자신의 불뚝 나온 배와 살덩어리, 하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자칫 조심하지 않으면 아이들과 여인들에게 행여 위협이 된다는 걸 모르는 이들, 옷장을 채우고 있는 회색, 재색, 검은색 외에도 세상에 얼마나 다채로운 색상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총천연색의 세상과 타자들을 주무르고 싶은, 삿된 욕망의 발톱을 그러모으고 있는 이들의 총체들, ‘아저씨’ 말고는 달리 지칭할 말이 없다. 그런데, 언제쯤 어떤 모양새여야 아저씨에서 벗어나는 건지 궁금하다. 분명한 건 누군가의 말처럼 '글을 쓰는 일은 남자로서의 부끄러움을 알아가는 일'이기에, 부단히 써나가며 내 안의 '아저씨'를 발기집어 경계하고 고발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