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무덤에서

- 사물들에게 배우는 방식 2 -

by another N

조금 전 도착한 햇살과

이제 막 도착한 햇살과

아직 도착 못한 햇살이 구분되지 않은

삼월의 늦은 오후


헤아려진 생각과

헤아리는 중인 생각과

헤아리다 만 생각들의

무덤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는 적막 속에 사이가 좋은 그들


기계공학과 시詩가 함께 눕고

니체와 교황이 어깨를 맞대고

호찌민과 닉슨이 서로를 베개 삼아

누워있었다


후세들의 침으로 겸손해진 그들이

눅눅한 곰팡이의 슬하膝下에서

죽은 시간의 비듬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서른 살이 훨씬 넘도록 삶의 향방을 정하지 못하고 떠돌았었다. 가끔 막막한 생각이 찾아들어 먼 하늘을 오래 바라보긴 했지만 푸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일찌거니 호구지책의 마련을 위해 자리를 잡은 이들이 부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설핏하게라도 좋으니 한 10여 년 정도 생의 시간을 바쳐 걸어볼 만한 목적지가 보이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세상은 국제정세 불안, 경기침체, 주가하락, 환율급등, 부동산 문제, 유가급등으로 왁달박달 시끄러웠다. 그렇게 떠돌다가도 유난히 마음이 가라앉는 곳이 헌책방이었다. 가끔은 3~4시간을 버스에 몸을 싣고 타지의 헌책방들을 찾아갔었다. 헌책방 골목에 들어서면 잠시 세상이 등 뒤로 사라지는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먼지 끼고 누렇고 네모난 세계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웅크리고 앉아 있노라면 스피노자와 쇼펜하우어와 니체와 유영모와 함석헌과 시인들이 찾아와 주었다. 주머니 속에 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해결할 끼니와 돌아올 차비를 헤아리다 보면 옆구리에 끼고 책방을 나올 수 있는 책은 2~3권에 불과했다. 그 책들을 들고 푸른 바다를 찾아 오래 걷곤 했다. 왜 헌책방들을 좋아했고 자주 찾았을까? 생각해 보았더랬다. 단지 돈이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지였을까? 고고故苦하고 엔틱 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어서였을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하나 스쳤다. 헌책방이야말로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평등과 평화와 안온함과 고요함의 궁극이 실현된 장소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0여 년 전의 이 시가 다시 떠오른 건, 여전한 지금의 시끌벅적함과 다툼과 분쟁들이 어서 빨리 헌책방으로 보내져 고요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이제와 드는 생각 하나 더, 헌 책방, 그곳은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가난한 청년의 임시 망명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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