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하고 싶은 아르바이트
그의 부재를 알아낸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날, 같은 반 친구들에게 들었다. 산타는 없다고. 산타는 사실 아빠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밤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안 갔던 장면이 떠올랐다. 머리맡에서 들려오던 부스럭 소리, 가지런히 놓아둔 내 양말 앞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 끙끙대고 있던 그 실루엣. 그가 아빠였음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믿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엄마에게 물었다.
“친구들 말이 사실이야?”
엄마는 “글쎄..”라고 얼버무리고는, 끝까지 확실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 다음 해엔, 산타가 방문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나와 산타의 추억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마침 내 딸은 초등학교 2학년이다. 내가 산타의 부재를 알아냈던 그때 그 나이를 그녀가 지금 살고 있다.
나와 반 친구들이 사실을 알아냈던 것과 다르게 우리 아이는 산타에 대해 전혀 눈치챌 길이 없다. 조금의 의문이라도 올라올라 치면, 엄마인 내가 냅다 칼차단해버린다.
“산타할아버지가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지켜보는 건데? 하늘에 떠있는 것도 아니고, 핀란드에 산다며?”
“산타할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요정 조사원들이 한 번씩 집에 들러서 엄마한테 물어봐.”
또 한 번은 유치원에 산타할아버지가 방문했을 때 딸이 물었다.
“유치원에 산타가 왔는데, 분명히 머리가 검은색이었어. 이거 분장한 거 아니야?”
“산타할아버지가 바쁠 땐 일일이 다 못 다니셔. 밑에 직원들 시키시는겨.”
이미 11월부터 부지런한 엄마들은 산타 알바 모드에 들어갔다. 맘카페에서는 벌써부터 선물 쟁이는 소리가 들린다. 핫딜은 한번 가면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법. 아이들 장난감 키워드를 걸어두어 핫딜이 뜨면 알람이 울릴 수 있게 해 둔다. 그렇게 미리미리 구입한 장난감들을 결전의 그날까지 집안 한구석에 숨겨두는 게 우리의 숙제다.
말이 쉽지, 이미 택배 뜯기에 맛 들인 아이들 앞에서 택배 상자 사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이들은 택배 상자만 보면 보이는 족족 열어보려고 한다. 이거 엄마꺼니까 제발 저리 가라고 해도, 무조건 본인들이 뜯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기관에 있을 때 택배가 오면 좋겠지만, 늘 그럴 수는 없는 법. 그렇게 해서 선물 몇 개는 중간에 강탈당하기도 한다.
선물과 더불어 산타가 주는 편지도 잊지 않는다. 최대한 핀란드 현지 분위기가 담겨있는 편지지를 인터넷을 통해 공수한다. 그중 대부분은 이미 글씨가 적혀있는 이미지다. 이참에 포토샵 실력도 발휘해서 안에 있던 글씨를 싹 지우고, 새 편지지처럼 만든다. 그리고는 내 글씨체와는 전혀 다른 글씨체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적는다.
‘엄마 말 잘 들어라.’
이렇게 열정적인 나. 이쯤 되니 문득 의문이 든다. 이건 정말 아이를 위한 선물일까, 아니면 ‘아이의 행복’을 핑계로 내 마음을 달래고 있는, 자기 위안 프로젝트일까. 아이들이 눈치챈 거 같다며, ‘그러면 여기까지.’라고 맥없이 끝내버린 내 부모에 대한 원망과, 상실감에 빠졌던 어린 내 모습에 대한 애도를, 산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게다가 일종의 사심도 섞여있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커서 이걸 회상하면, 나에게 얼마나 고마워할까. 그걸 보는 내 마음은 또 얼마나 뿌듯해질까?‘라는 기대감도 섞여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아이들보다 내가 더 얻는 게 많다. 이쯤 되니 누가 산타 선물을 받는 건지, 헷갈린다.
아이에게는 선물, 나에게는 들키지 않아야 하는 숙제. 하지만 그런 숙제라면, 앞으로 몇 년이고 더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