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소원은 평등 밥상
“사위는 아직도 어려워. 진짜 손님이야.”
”근데 있지, 요즘은 며느리도 눈치 보인대. “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내 앞에 앉은 두 아주머니의 수다가 불현듯 내 귀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며. 느. 리. 도.”라는 워딩이 귀에 팍 꽂혔다. 사위던 며느리던 똑같이 자기 자식과 결혼한 사람들인데, 사위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고, 며느리 눈치를 보는 건 왜 놀랄만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걸까. 이런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인드를 매번 대면하게 되는 건, 역시나 시댁 가족 모임 밥상에서다.
우리 가족 모임, 저녁 상차림은 앉을자리부터 고정되어 있다. 물론 가장 상석은 사위가 앉는다. 길게 뻗은 상에서 사위는 정중앙에 자리한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회장님 자리라 할 수 있다. 양 옆은 아무도 없어 누구의 다리 하나 닿지 않고 편안하게 홀로 가부좌 자세로 앉을 수 있다. 게다가 이 자리는 주방에서 가장 먼 쪽이다. 먹다가 일어날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좌석 배치다.
사위 앞, 상의 각진 모서리 부분을 지나, 그 양 옆으로는 각각 어머님 핏줄인 시누와 내 신랑이 차지한다. 이 자리도 꽤 좋은 자리다. 사위님 주변에 있어 메인 반찬도 가깝고, 다리 한쪽이 비어있어 비교적 편안히 앉아 식사할 수 있다.
이 집에서 가장 서열 꼴찌인 며느리, 나는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는다. 식사 중 뭐가 모자라다 싶으면 가장 먼저 반응해서 부엌에 다녀올 수 있는,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만 앉는 자리다. 게다가 앉은 자세도 한쪽 다리는 구부리고, 다른 쪽 다리는 천장을 향해 접혀있는, 일명 ’ 달리기 전 준비 자세‘다. 무언가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 요이땅‘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맛있는 메인 음식은 모두 사위 앞에 놓인다. 갈비, 불고기, 게장, 대하, 회 등 이 날의 메인 음식 말이다. 그리고 점점 나에게 다가올수록 음식은 육식에서 초식으로 바뀐다. 콩나물 무침, 고구마 줄거리, 김치가 대표적이다. 그나마도 최근 가족 모임에선 내 앞에 있던 김치도 사위님 옆으로 갔다. 시어머님 말에 의하면 배추가 한 포기에 만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아하. 이게 바로 그 이유였다.
이 날 아주버님 앞에는, 손만 대면 뼈가 쑥 빠질 정도로 야들야들하게 잘 삶아진 갈비가 놓여있었다. 그래도 팔을 쭉 펴면 갈비에 손이 닿기는 했다. 하지만 내 옆에는 눈치 없이 상에 바짝 붙어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신랑이 있었다. 신랑 젓가락질을 피해 찰나의 순간에 갈비를 포획해야 했는데, 마치 정글에서 곰을 피해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정글 숲을 헤치고 나아가 먹은 두 점의 갈비가. 얼마나 맛있고, 입맛을 돋우는지. 갈비 속에 담긴 당면도 후루룩 같이 먹고 싶었는데, 미끄덩거리는 당면까지 집기엔 아무래도 무리였다.
’ 에레이 안 먹고 만다.‘
그나마 이번처럼 다 된 밥상을 먹을 땐 나은 편이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땐 새삼 차별을 더 실감한다. 다 익은 고기 덜어놓을 빈 접시는 아주버님 앞으로, 생고기, 집게와 가위는 나와 신랑 앞이다.
한 번은 고기를 먹다 아이들 뒤치다꺼리할 일이 생겼었다. 정리 좀 해준 뒤, 다시 식사를 하려 거실에 나왔는데, 이때 신랑한테 하셨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 그만 구워. 먹을 사람 없어.”
그러고 보니, 사위님이 식사를 다 하시고 일어나 계셨다.
이런 은근한 밥상 차별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베어온 일종의 관습이다. 내가 어렸을 적을 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 집은 더 심했다. 명절날 남자들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밥상이 차려지기만을 기다렸다. 작은 엄마들은 남자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먼저 밥상을 차려 내어 주고, 본인들은 부엌 가까이에 따로 상을 차려 드셨다. 남자들 상에는 다양한 음식 가짓수와 술이 곁들여져,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듯했고, 그에 반해 여자들은 비교적 간소한 밥상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이렇게 남녀가 불평등한 집안이 있나 싶지만, 당시 이런 모습은 결코 우리 집 만의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걸 보면, 우리 어머님이 상차림을 모두 도맡아 하시는 것부터가 어쩌면 엄청난 진보를 이뤄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아주머니들 말처럼, 나름 어머님이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걸 지도.
하지만 난 여기서 더 나아가고 싶다. 어느 누구도, 차별이라 느끼지 않을 밥상을 차리고 싶다. 모든 음식은 좌석에 상관없이 손이 닿도록, 정중앙에 공용 집게와 함께 두거나, 아니면 아예 뷔페처럼 아일랜드 식탁에 음식을 차려두고, 먹고 싶은 건 각자 자기 그릇에 덜어오는 방식이 어떨까. 평등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방법을 내 나름 머릿속에 그려본다.
사위와 며느리의 자리가 다르지 않고, 고정석이 없고, 누가 특별히 귀하거나 누가 당연하지 않은 관계. 존재만으로 서로가 존중받는 자리. 훗날 내가 차린 식탁은 그런 평등한 식탁으로 조금 더 나아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