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처럼 흐르는 선들의 향연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 전시회 - 부산현대 미술관
세상에 나오다
그녀는 유언으로 "사후 20년간 그림을 공개하지 말라"라고 남겼다.
아직은 시대가 그녀의 그림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스스로 직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초의 여성 추상 화가. 스웨덴.
칸딘스키·몬드리안과 동시대에 살면서도,
훨씬 앞서 ‘추상’을 그려낸 선구자였다.
그녀의 그림에는 신지학·인지학,
그리고 존재와 우주에 대한 철학적·불교적 사유가 흐른다.
‘신전’, ‘원자’, ‘의식’, ‘진화’, ‘자연’…
그녀가 붙인 주제들은 단순한 제목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탐험이자 탐구였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첫 대규모 전시.
세상은 비로소 그녀를 새롭게 불렀다.
1,500여 점의 작품, 26,000페이지에 이르는 작업 노트--
그 기록은 경이로웠다.
나를 만나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마주한 그녀의 그림들.
노랑, 파랑, 주황, 그리고 알 수 없는 선과 형상들.
그 선들은 정지해 있지 않았다.
흐르듯이 움직이며 살아 있었다.
형상은 제멋대로였고,
내가 이해한 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심장은 두근거리기도, 가라앉기도 했다.
분명한 건 하나.
그녀가 느낀 대로, 결정한 대로
모양과 색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사물도, 사람도, 자연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도
모두 정해진 것이 없다.
변하고, 진화하며, 흘러간다.
‘들숨·날숨’을 스치다
많은 작품 중에서 나는 ‘들숨·날숨’이라 적힌
그림을 스치듯 보았다.
“아니, 숨을 그리다니!”
그 순간,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녀가 본 ‘숨’을, 나도 안다는 게 가슴 벅찼다.
파동처럼 전해 온 공감이 나를 흔들었다.
(잠시, 자뻑 타임~, 거장의 심오한 우주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내가 대견했다.)
100년을 넘어, 감사로
그녀는 재능과 부름에 응답해 그려냈다.
세상이 외면했지만,
100년을 넘어 당당히 세상 앞에 서게 되었다.
오늘의 우리는 과연 그녀의 그림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각자의 범주 안에서 감상하겠지.
그게 예술의 맛이니까.
나는 느낀다.
100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내 세상'을 알고 있는
위대한 화가와 조우한 기쁨을.
감사한다.
저런 세계가 있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준
그녀에게.
이 만남은 내 안에 혼자 품고 있지만,
그 들뜸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참, 그림에 대하여 함께 간 이들이 각자 던진 해석 중에서, 어느 유려한 ‘선’과 ‘모양’에 대한 의견 일치가 재미있었다. 흐흐.
정자와 난자가 만나 짜~잔 하고 수정란에서 배아가 되기까지의 모습이 ‘10점의 대형 연작’ 속에 은근히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동시에 포착했고,
소리 내어 말했다.
“아! 저것은 생명의 시작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