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맨 Mar 09. 2024

<슬픔이 택배로 왔다> - 시인의 영혼의 향기

정호승 시인이 지난해에 낸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를 읽었다.

1950년생인 시인은 어느덧  73세가 되었다. 

<별들은 따뜻하다>(1999년)를 읽고 처음이니 나는 그의 팬은 아닌거겠지만 내가 나이먹은만큼 행간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읽히는 이번 시집이 참 좋았다.



몇편을 적어본다 .


모닥불 


강가의 모닥물 위에 함박눈이 내린다 

하늘의 함박눈이 모닥불 위에 내린다 


모닥불은 함박눈을 태우지 않고 스스로 꺼진다 

함박눈은 모닥불에 녹지 않고 스스로 녹는다 


나는 떠날 시간이 되어 스스로 떠난다 

시간도 인간의 모든 시간을 스스로 멈춘다 


이제 오는 자는 오는 곳이 없고 

가는 자는 가는 곳이 없다 


인생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 

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 


꽃을 따르라 


돈을 따르지 말고 

꽃을 따르라 

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 

봄날에 지는 꽃을 따르라 

벚꽃을 보라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꽃잎에 

봄의 슬픔마저 찬란하지 않느냐 

돈을 따르지 말고 

지는 꽃을 따르라 

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 때 

가장 아름답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삶과 죽음 고통 증오 사랑 비움 용서등에 관한 이야기다.

조금 차갑기도 우울하기도  따뜻하기도 ,쓸쓸하기도 하다. 

특히 시인은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일화를 적기도 했는데,그 시들이 놀랄만큼 일상적이어서인지 더욱 가슴이 아리다. (특히 부모님 중 한분이라도 아프시거나 떠나보낸 기억이 있는 사람이면 눈물이 찔끔, 날 것이다)

그 중 한편을 적는다.


아버지의 기저귀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 

다시 기저귀를 갈아드릴 수 있다면 

나 아기 때 엄마가 내 기저귀를 갈아주신 것처럼 

종이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아기 달래듯 달래며 

아버지 허리 좀 드세요 

괜찮아요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세요 

토닥토닥 아버지를 달래며 환하게 웃어드리겠네 

물티슈로 엉덩이를 깨끗이 닦아드리며 

늙고 병들면 인간은 기저귀를 차야 한다고

누구나 아기처럼 기저귀를 차야할 때가 있다고 

그럴 때는 자식이 부모의 기저귀를 갈아드린다고 

말없이 귓속말로 말씀드리며 

아버지 한숟가락만 더 드세요 

밖에 봄이 왔어요 

사람은 먹어야 살잖아요 

싫다고 고개 돌리시는 아버지를 껴안고 

미음 몇숟가락 더 잡수시게 하고 

흩날리는 벚꽃을 기저귀에 주워 담아드리겠네 

땅바닥에 떨어진 목련꽃 그늘도 듬뿍 주워 담아 

아버지의 기저귀에서 나는 봄의 꽃향기 

아버지라는 아기 냄새를 흠뻑 맡겠네   



대학다닐 때 몇개월 특강으로 시론/ 소설 수업을 나눠서 한적이 있다.

그 때 시론과 소설 중에 하날 선택했어야하는데,나는 시를 쓸 자신은 도무지 없어서 소설을 선택했었다.

그 때 시론을 강의했던 분이 바로 정호승 시인이었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그 때 시론을 선택하지 않은 나자신을 다시한번 나무란다. 


(정호승 시인/ 출처 : 창비) 


요즘은 내 인생의 선택들에 대한  '후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을 틀린 '선택'들과 그에 비례하는 별책부록과도 같은 '후회'들에 대해 말이다.

' 후회가 택배로 왔다'  의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썩어가는 모과향은 모과의 영혼의 향기다 .내 육신은 늙어가도 내 영혼만은 시의 향기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해본다.시를 향한 내 마음만은 50년전 처음 등단했을 때 그 청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 <슬픔이 택배로 왔다> '시인의 말' 중에서 정호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