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분자가 폭발했다.

너와 나의 다름이 점을 만들어 하나의 획을 긋겠지

by 갑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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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서울 남자, 벌레를 보면 어지간한 강력사건을 마주한 것 보다 더 놀라는 남자, 지저분한 걸 너무나 싫어하는 남자, 차 안에 휴지 조각 하나 용납치 않는 남자, 쓰레기통이 우리집 화장대보다 깨끗한 남자, 그런 사람과 사랑하고 있다.

그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깨농장 아들처럼 푸근하고 순박하니 넙대대하다. 그런 그의 반전은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오랜 기숙사 생활 때문인지 필요 이상의 깔끔함을 갖고 있다.

지난번 올렸던 ‘사과를 땄다.’는 글에서 갔던 봉화 여행 이후 충주로의 여행 일정이 공지됐다. 충주, 병맛 마케팅으로 돌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곳. 그곳에 있는 사과 농장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됐다.

서울남자 밍구를 꼬셨다.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2020.02.02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날이니 함께하면 참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말로 그를 꼬드겼다.

한동안 피로에 절어 방구석 데이트만 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그 까탈스런 남자가 선뜻 가겠다 말했다.

그의 붕붕이를 타고 비록 미세먼지로 세상 뿌연 하늘을 애써 저것은 미세먼지가 아니라 안개라며 스스로를 속이며 그렇게 여행길에 올랐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세월을 파는 농부’ 사과 농장에 도착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곳곳의 나무는 헐벗어 자연의 생동감보다는 을씨년스러움이 느껴졌다. 죽은 듯 죽지 않고 겨울의 색을 입은 자연의 또 다른 색이겠지.

이번 일은 사과를 수확하는 게 아니라 나무 중 영양가 없는 부위를 잘라내고 길가 곳곳에 너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한군데에 모으는 작업이었다.

울퉁불퉁 반 진흙 밭을 뒤뚱이며 오리걸음으로 걷다가 어느 정도 모인 나뭇가지를 제일 바깥으로 모으는 작업을 진행했다.

나의 짝꿍은 곱게 자라 이런 육체노동을 잘하지 못할 거라 짐작했다. 정말 오산이었다. 그는 정말 묵묵히 본인의 파란색 빤쮸가 보이는 것조차 모른 채 일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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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지고 농장일을 마친 뒤 우리는 각자 개인 정비 시간을 갖고 집 밖 테라스에 모여 바베큐 파티를 시작했다.

도란도란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난로에 마시멜로도 구우며 우린 낯선이들이 하나로 스며가는 그 과정을 즐겼다.

내향적이고 사람이랑 어울리는 걸 그닥 즐기지 않는 내 짝꿍은 자신의 차에서 홀로 시간을 가졌다. 잘 시간이 되고 공간이 넉넉지 않아 남성 팀원들은 거실에서 잠을 청했는데 내 짝꿍은 아무리 집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에 있었다. 차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 충주시의 불빛이 한 눈에 보이는 농가의 앞마당 기온은 너무나 차가웠다. 걱정되는 마음에 그를 깨웠고 그 과정은 결국 약 3시간 가량의 언쟁으로 번졌다.

왜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느냐, 난 거실에서 잠을 못 잔다, 너무나 불편하다 등등 그런 그의 말에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될 것을 난 또 따박따박 대답했다. 언쟁이 불이돼 서로를 할퀴기 직전 언제나 그렇듯 우린 또 어이없게 웃으며 화해했다.

화해의 뽀뽀를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미칠 듯한 갈증에 허덕였다.

“물 어딧어? 물”

“이거 물 아니야?”

거실에서 사람이 자고 있으니 불을 켤 수도 없고 당연하게 냉장고 홈바를 열었다.

우리가 아는 그 2리터 생수병에 들어 있던 진한 색의 물은 당연히 시골에서 맛보는 ‘맛있는 물’일 거라 생각했다.

“이거다? 그치? 그거 맞지?” 소근소근 혹여나 우리가 내는 소리에 사람이 깰까 발뒤꿈치까지 들어가며 쥐마냥 살곰살곰 걸어 다녔다.

그 병이 물이라는데 우리 둘다 동의했고 나의 짝꿍은 너무나 매너있게

“너가 먼저 마셔”

그 병의 뚜껑을 여는 순간 ‘펑! 취이익’

그 고요함 속 불청객이던 우리를 벌주듯 그 펑! 소리는 우리를 얼음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달콤 쌉쌀한 냄새는 복분자 액체와 함께 사방으로 날아갔다.

옆에 있던 짝꿍은 힉~하며 그 고요함 속 소란스러움을 숨기며 핸드폰 손전등을 켜서 휴지로 야금야금 닦아 냈다. 그런 어이없는 상황에 크게 웃지도 못하며 끅끅대며 나는 웃음을 삼키기 바빴다.

그 복분자 폭발 사건을 회상하며 우린 한참을 킬킬 거리다 거실에 나란히 누워 등짝이 따가울 만큼 뜨끈한 아랫목에서 낯설음에서 오는 불편함에 한참을 뒤척였다.

다음 날 날이 밝았다. 우리의 아침을 차려주시는 어머님의 노고에 내 짝꿍은

“어머니 뭐 도와드릴까요?”

“응~ 가서 음식쓰레기 좀 버리고 와”

“어디에 버리면 되요?”

“응~ 밭에다”

“여긴 음식물 쓰레기통이 없나요?”

“응~ 여긴 그런 거 없어, 밭으로 가~”

그 순간 짬통을 들고 있던 짝꿍의 얼굴에 느낌표가 뜨는 게 보였다. 나만 아는 너의 표정. 스스로에게 뜬 느낌표를 애써 지우며 홀로 ‘그럴 수 있다.’를 암시하며 나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또 쿡쿡 댔다.

음료수를 먹고 나면 그 통을 깨끗이 헹궈 말려서 분리수거 통에 넣는 그런 사람이 음식을 그냥 버린다는 거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싶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그저 재밌고 우스웠다.

우리가 서울에서 데이트하면 보지 못할 겪지 못했을 이야기들. 복분자 폭발, 음식쓰레기 버리기, 사과 나뭇가지를 줍는 내 짝꿍, 무지에서 오는 순수함이 평소에 볼 수 없던 그 어리바리함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뭔가 별스타 갬성의 여행이 아닌 흙냄새 진득히 나는 그런 여행. 허클베리핀.

설거지통에 물 한 방울 안 남기던 그가 빤쓰 보이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함께 물을 찾다 복분자도 터트리고, 서로가 알지 못하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며 우린 또 다른 점을 만들었다.

난 이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그 선이 우리만의 그림을 완성 시켜줄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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