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싫은 이유가 뭐냐고?

밀레니얼 세대라서가 아니다.

by 갑순이

회식을 기피하는 세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꼽는다.

기성세대는 우리 세대가 자신들의 시간이 중요해서, 사회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콕 찝어 말한다.

단언한다. 이는 틀렸다.

최근 이직한 회사에서 전체 회식이 진행됐다. 1차 회식은 누구하나 빠지지 않았다. 회사의 실세인 A님께서 2차 회식 장소를 고지하고 “오고 싶음 와~, 00삼겹살이고 00건물에 있는 건데 오고 싶음 와~”라고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아직은 시용기간, 가야 하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리 국장님은 안가도 된다 말했지만,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건 권유가 아니라 강요라는 걸.

운이 너무나 좋았는지 나는 A님 바로 옆에 착석했다. 그는 끝없이 자기 자랑을 시전했다. 자기 패션이 어쩌고~ 자기는 사람을 잘 봐서 자기가 뽑은 사람들은 어쩌고~

자기 인생이 어쩌고~ 하... 한 두마디 쯤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귀를 닫은 채 형식적인 리액션만 했다.

간혹 와~ 우와~ 아하~ 박수! 이런... 정작 뒤돌고 나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얼을 놓고 있었는지 자신이 말한 회심의 자랑에 내가 반응을 하지 않자 그는 구태여 “내 말 좀 들어!”라며 내 팔을 잡았다.

무료함 속에서 자기의 흥에 취해 일방적으로 짠을 강요하고 일방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으며, 엄청난 리액션을 바란다. 그게 당신들이 말하는 ‘회식’이란 걸 깨달았다.

이전 세대는 그럼에도 견뎠다라는 말은 이전 세대가 얼마나 불공정을 방치했는지에 대해 방증할 뿐이라 일침하고 싶다.

그렇게 해야지만 승진을 하고 그렇게 해야지만 성과 점수를 얻어내는 그 시대를 잘 참아 온 것이 정말 자랑인걸까?

아니, 그 안에서 끝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이런 불의를 정의로 되돌려 놓기 위한 윗세대가 존재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우린 공정의 시대를 기대한다. 정의를 사랑하고 정의를 쫓고자 한다.

조금은 더 공평한 세상을 꿈꾸며 누군가 조성한 카르텔이 정의의 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들끓는다.

회식을 거부하는 것 또한 그것의 일부다.

난 개인적으로 술자리를 좋아한다. 일방적인 이야기 말고 내 입을 열어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조언을 해주고자 하는 이들과의 술자리를.

최근 내가 좋아하는 어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누구하나 “라떼는 말야~”를 시전하지 않았다. 요즘 즐거운 게 뭔지, 요즘 힘든 게 뭔지 나이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나눴다.

나 역시 물었다. 그 시대에 여성이 변호사가 됐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 결심했는데 마흔이 넘어 결혼한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고.

“흠... 인생에 무슨 선택이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데, 난 저 사람이면 결혼이 갖는 나쁜 점을 참아 볼 수 있겠다 생각했어, 결혼 하니까 안정감이 생기더라고”

“그 직업을 가졌는데도 안정감이 없었어요?”

“아무래도 부모님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시고, 외동인데 아플 때 누구 하나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없을 때 돈으로 사람을 구할 순 없잖아, 그런데서 오는 불안감이랄까? 근데 강요하고 싶진 않아, 분명 희생하는 게 있거든.”

또래에선 얻을 수 없는 이야기, 나보다 20년 혹은 30년은 더 살았기에 겪어 봤던 이야기를 얻을 수 있는 자리. 그게 돈 내고 듣는 강의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한다.

이런 이들과 갖는 술자리를 회~식이란 단어가 붙어도 즐겁다. 나를 인격으로 대해준다. 나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다.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회식이 싫은 이유는 우리가 ‘지들만 알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교화의 대상, 리액션 해주는 애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받아주는 애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경험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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