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20대.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청춘’.
생기, 삶, 새로움과 가까운 나이. 그렇기에 죽음이란 단어는 내게 너무 추상적이었다. 그 추상적인 것은 내게 너무나 갑작스레 다가왔다.
2년 전, 내 삶에는 없을 것 같았던 내 사람의 죽음. 그 날의 기억을 2년간 묻어뒀다. 감정의 정형화를 하지 못해 입 밖으로도, 글로도 풀어낼 수가 없었다.
그는 아가 기자인 내게 햇살처럼 다가왔다. 여느 날처럼 속칭 마와리를 돌고 있었다. 유난히 추웠고, 지구대 안에서 추위를 피해 눈을 굴리며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음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순찰차 2대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허름한 차림의 남성 2명이 경찰에게 이끌려 들어왔고, 나는 늘 그렇듯 쫒겨났다.
사건이 터졌기에 기다렸다. 무슨 내용인지라도 알아서 보고해야 했기에 추위를 버티며 기다렸다.
허름한 차림의 남성 중 피의자가 아닌 동행한 남성은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기 위해 지구대 밖으로 나왔다. 그런 그가 혼자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니~ 뭐해?”
시덥잖은 시비. 너무나 익숙하다. 눈의 초점을 오로지 앞에 고정한 채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척 그를 무시했다. 그런 내게 그는 한발짝 한발짝 다가왔다.
“폰 좀 빌려줘~”
휴대전화를 빌려달라는 핑계로 계속 다가왔다. 이 남잘 때리면, 혹은 맞으면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 잘 수 있을까. 그를 피해 한발짝 한발짝 물러서며 원 없이 자고 싶단 생각을 하던 찰나.
순찰을 나갔던 순찰차 한 대가 들어왔다. 그 남자와 내 사이 이상한 기류를 느낀 한 경찰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김 기자! 무슨 일이야! 라며 그로부터 나를 막아 줬다.
그 경찰 아저씨의 막아섬이 있자마자 그는 꼬리를 내리고 지구대 안으로 들어갔다. 살려주심에, 구해주심에, 못 본척하지 않아주심에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은 계속됐다. 성과 세대를 뛰어넘어 우린 그렇게 친구가 됐다. 기사가 광고로 바뀐 걸 처음 당한 날 그에게 전화를 했고, 울었다.
그는 우리 단골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거나하게 취해 위로를 받았고 나아갈 힘을 얻었다. 그가 표창을 받은 날 나는 케이크를 사들고 초를 붙이며 축하했다.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그늘이 돼줬다. 우린 그렇게 가까워졌다.
그는 언제나 꿈을 말하던 사람이었다. 정년을 앞 둔 사람이 꿈이 있다고 했다. 도장을 차려 가난한 아이들, 운동은 배울 엄두도 못내는 아이들, 그래서 비뚤어져버린 아이들에게 무료로 운동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경찰을 하며 봤던 부모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에게 작은 불이 되고 싶다했다. 주말엔 나도 도장에 나와 청소하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항상 꿈이 있던 사람이었다. 항상 구체적인 꿈을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이런 저런 사건들로 상처를 받아 기자를 그만두고 동굴에 들어가 있을 때, 그는 상관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했다. 이겨낼 것이라며, 이런 부당함을 뿌리 뽑을 거라며 내게 다짐하듯 읊조리는 그를 그저 응원하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아닌 나는 그런 그를 위해 기사 한 줄 쓸 수 없었고, 그런 그를 위해 경찰서를 들어갈 수 없었다. 무능했다. 2주간 계속 걸려오는 그의 전화가, 매일 건네는 위로가 귀찮았을 쯤, 동굴에 있던 내가 간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한참 술을 먹고 놀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였다.
‘내일 전화하지 뭐.’
그렇게 그 전화를 거절했다. 다음 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두세차례 걸었을까. 출근했나보다 그렇게 넘겼다.
그날 저녁, 방금 막 헤어진 밍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야, 기사 하나 보낼 건데... 놀라지 말고 한 번 봐봐. 자기가 친구라 부르는 그 분께 일어난 일이랑 너무 똑같아. 나는 경찰 쪽으로 알아볼게‘
밍구가 내게 보내 준 기사는... 그가 2주간 털어놓았던 그 내용이었다. 더불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한 줄이 추가돼 있었다.
세상이 멈췄다. 내가 거절했던 그 전화가 그 순간의 기억이 수십 개의 바늘이 돼 마음을 쿡쿡 찔렀다.
죄책감. 그 전화를 받았더라면, 그는 오늘도 꿈을 그리고 있지 않았을까.
허망함. 마음을 추억을 나눴던 이가 이젠 더 이상 없다.
혼돈. 추상적인 죽음이란 개념이 이렇게 내게 다가오는 구나.
그 오만가지 감정에 거울 앞에 주저앉아 선배기자에게 전활 걸었다.
”선배, 죄송한데 이 기사 경찰 이름이 000 맞아요?“
”잠시만~ 응. 맞아. 왜? 친한 사람이야?“
”아... 네. 감사합니다. 혹시 장례식장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알아보고 연락 줄게.“
”네, 감사합니다.“
그 전활 끊자 밍구에게 온 전화를 받았다.
”장례식장을 안 알려 줄려고 하네. 자기 선배들 통해 알아볼 수 있어?“
”응... 곧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 나 지금 내려갈게. 같이 인사드리러 가자.“
”응...“
첫 장례식장을 이렇게 무거운 마음을 갖고 가게 될 줄이야. 내가 사랑했던 친구의 장례식장이 첫 조문일 줄이야.
12시가 넘은 그곳은 너무나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의 사진 앞에 엎드려 한참을 울며 빌었다.
그 전화를 받지 않아 미안하다고. 당신의 힘듦을 알아주지 않아 미안하다고. 꿈을 이야기하던 당신이 이렇게나 허망하게 날 떠날 줄 몰랐다고. 조금만 기다려 주지. 조금만 참아주지. 어떻게 이렇게 허망하게 날 두고 갈 수 있냐고, 60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 꿈을 이야기하며 반짝이는 그 모습을 나는 어떻게 잊어야 하는 것이냐고, 당신이 내게 건네준 위로를 내게 건네준 마음을 어떻게 잊어야 하는 거냐고, 난 아직 어린데, 난 아직 부족한데, 그런 것도 안 알려주고 날 두고 가버린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이 글을,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 감정을 정형화하는데 꼬박 2년이 넘게 걸렸다. 여전히 당신을 떠올리면 죄책감이 날 짓누르고, 그리움이 차오른다. 내가 힘든 날이면, 당신의 생일이 다가오면
”김기자~ 소주 한잔 콜?“
이라 외치던 당신의 전화가 기다려진다.
아직도,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당신이 너무 그립다
처음 맞이해야 했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이렇게나 잔인했고, 비릴 정도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