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표를 던졌다.

선택에 대한 책임

by 갑순이

종전 사태로 면담이 계속됐다. 그는 모두가 자신의 권위를 세워 나를 짓밟아 줄 거라 기대했나 보다.


거만하고 어디 당해봐라는 그 표정에 합의금으로 줄 수 있는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계산했다.


결국 난 그래, 나도 나가고 너도 나가는 끝을 보여 주겠노라.


주말 내내 그간 녹음한 녹음 파일과 카톡 증거들을 정리해 8페이지짜리 고발서를 작성했다.


그걸 모두 읽고 난 임원들은 끝을 보겠다는 게 느껴지는데 맞느냐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개최했고 난 시말서 처분을 받았다.


오늘 시말서와 사표를 던졌다.


회사는 당황했다. 반성문과 사직서라니, 무슨 뜻 일까 당연히 고민됐을 거다.


전에 다니던 노조에서 그만두기로 결심한 이유.


하나, 회사 운영진들의 무책임함.


하나, 조직 관리의 미비


하나, 체계 없음


이 세 가지였다.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내게 "싸워서 이겨."라는 무책임 함을 보였고, 매일 같이 야근하는 홍보국과 달리 출근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가 존재했다.


그저 체계를 만들어 달라, 업무 분장을 만들어 달라, 요구했다. 그러겠노라 약속한 위원장은 임기가 끝나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체계의 부재에 결국 난 사표를 집어 들었고 업력이 꽤나 긴 체계가 있을 것 같은 지금의 회사로 옮겨왔다.


동료들이 좋았고, 동기가 좋았다. 일은 너무나 쉬웠다. 9 to 6는 지금껏 가장 잘 지켜졌다.


그저 무능한, 홍보의 ㅎ도 모르는 사람이 어부지리로 홍보 부장에 앉은 게 문제였다. 그는 자존감이 낮은 데다 업무 능력마저 자신보다 어린 여자에게 달리자 참지 못하고 온 몸으로 부들 거림을 표현했다.


내가 내는 아이디어는 '안된다.'로 막혔다. 그 아이디어는 곧 부장의 아이디어가 돼 보고됐다. 어느 회사에나 있다는 성과 훔치기.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쓴 글 역시 훔쳐갔다. 내가 만든 콘텐츠도 훔쳐갔다. 괜찮았다. 이로써 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면 내 능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멍청한 그는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주변에 내가 일을 안 한다는 헛소문을 퍼트리며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을 자행했다.


이건 참을 수 없다. 거짓으로 남을 깎아내리는 건 회사에서 흔히 발생하는 부조리에 해당되지 않는다 판단했다.


이에 난 내가 한 일을 내가 했노라, 아이디어는 곧장 최상급자에게 보고했다.


내 이런 투쟁에 그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윗사람에게 일렀다.


4번을 일렀다.


회사는 결국 인사위를 개최했고 내게 경위서 처분을 내렸다.


무엇을 잘 못한 거지... 글을 쓰며 막히는 순간을 처음으로 맛봤다.


두루뭉술, '제 그릇이 작았습니다.' 기술했는데 결국 빠꾸 당했다. 한참을 설명했고,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는 그 긴 업력이 그냥 지나오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감동했다. 처음으로 보는 회사의 노력에, 체계를 만들고자 함에.


있는 말 없는 말 만들어 시말서를 작성했고, 사직서를 작성했다.


시말서를 쓴 이유, 회사가 고민하려 노력한 것에 대한 감사의 포현.


사직서를 쓴 이유.


난 그저 쳇바퀴 구르듯 안정적으로 나오는 월급에 감사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29살,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 성장이 아닌 도태됨에 빠지고 싶지 않다. 꿈을 그리며 체계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관리자가 됐을 때 무능력한, 체계 없는, 아랫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상사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지금의 부장을 지난 7개월 간 살펴보며 배울 게 없다 판단한 지는 오래됐다. 하던 대로 미친 듯 달리며 내가 만들어 가자, 이렇게 좋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건 행운이니까.


그런 내 결심을 결국 부장은 무너뜨렸다.


낮은 자존감, 열등감, 이상한 권위주의, 무능력함, 리더십의 부재.


무엇보다 그는 또 이를 것이다. 이유 없이 구설수에 오르는 내가 지금이야 신뢰를 받지만 그 신뢰가 얼마나 유지될까.


모든 걸 지닌 그의 밑에서 난 성장할 수 있을까?


수천 번, 수십 번, 되물었다.


결국 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선택에 대한 책임, 이 선택에 대한 감당, 난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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