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행, 그리고 투쟁

더는 아픈 이들이 없길 바란다.

by 갑순이


"언니, 언닌 뭘 위해 투쟁해요?"

회사에서 투쟁문을 읽었다 말하니 참 존경하는 동지가 내게 물었다.

안다. 나의 작은 꿈틀거림과 고양이의 하악질에 불과한 포효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는 걸.

난 그저 내 다음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투쟁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 투쟁의 역사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장녀에 대한 부담을 주던 아빠에게 "오늘부로 장녀 자리를 사직하옵니다. 오늘부터는 첫째 동생에게 장남 자리를 위임하겠습니다. 오빠!"

결국, 아빠를 혀를 차며 내게 어떤 것을 강요하는 행위를 멈췄다.

언시생(언론고시생) 시절 스터디를 가기 위해 탄 버스 안에서 추행을 당했다. 즉각 소리를 질렀고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112를 눌러 도움을 요청했다.

사고는 멈췄지만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는 그 생각에 상황을 설명하고 위치 동의를 했으며 전화를 끊지 않고 버스 기사님께 향했다.

버스를 세워달라고 한다, 뒷문을 열어 저 인간이 도망친다면 기사님 역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곤 내가 가진 우산을 무기 삼아 문 앞을 지켰다.

몇 번이고 도망치려는 가해자를 향해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 질렀다.

승객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몇몇 할머니들은 내게 좀 만질 수도 있지, 뭘 이리 유난을 떠냐는 힐난을 가했다.

그 소리에 반박했다. 당신의 오늘에 불편을 초래한 건 내가 아니라 저 xx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래도 말했다.

내 또래 여성들은 응원한다, 나 역시 당했지만 무서워서 말하지 못했다. 멋있다.

곧 도착한 경찰, 경찰의 대처는 훌륭했다. 다른 순찰차를 태웠고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해주었다.

진술서를 쓰고 며칠이 지나 검찰 형사조정위원회가 열렸다.

합의를 강제하는 자리였다. 참 많은 이를 데리고 온 가해자와 달리 난 혼자였다.

가해자 측의 주장을 일관됐다. 실수였다, 네가 이뻐서 그랬다.

조정 위원들도 작심한 듯 예뻐서 그런 거랍니다 라는 기가 찬 소리를 내뱉었다.

이에 난 "예뻐서요? 그럼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비너스상 만지면 인정할 게요. 미술관에 가서 피카소 작품 만지면 이해할 게요."

이뻐서 만진다는 그 말을 어떻게 당신들이 내뱉을 수 있냐, 그냥 만만하니까, 약할 것 같으니까, 지금껏 다른 여성들은 무서워 신고하지 않았으니까 저 인간은 상습적으로 타깃을 설정해 만진 거다라고 항변했다.

그들은 그래도 양해해달라 했다. 이에 짧게나마 배운 법 지식으로 반박을 이어갔다.

우리나라 형법 자체가 처벌이 아닌 교화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느냐, 그렇기에 전 저 사람의 교화를 위해 합의해줄 생각이 없다.

초범이니 기껏해야 봉사나 할 것이고 기껏해야 교육 명령이나 받겠지만, 이 일로 저 사람은 교육을 받고 또 다른 여성을 만질 때 한 번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 이젠 처벌받겠구나라는 생각을.

결국 난 합의를 하지 않고 그 자릴 박차고 나왔다.

안다.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처벌은 너무나 귀여웠다. 마치 그 정돈해도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적어도 나 같은 이들이 세 명만 나와도 그의 처벌이 더는 귀엽지 않을 것이다.

더는 관대하지 않을 것이란 작은 믿음이 있다.

요즘도 난 지하철에서 필요 이상의 쩍벌을 하며 피해 주는 이들에게 다리 오므려 달라 말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운동한다는 마음으로 돼지 싸움을 한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술을 먹는 내게 성적인 욕을 하거나, 이유 없는 시비를 걸면 "다시 말해 보세요."를 외친다.

무섭지 않으냐 묻는다면, 무섭다. 물리적 힘 차이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러나, 나 같은 애를 한 번 만나고 나면 그들은 그렇게 쉽게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이들에게 혐오를 표출하지 않게 된다.

무시하는 게 답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시는 약자를 향한 분노와 혐오에 그럴 수 있다 인정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한다.

이번 서울역 사건에도 미친 듯 공감하며 아팠다.

계속 그래 왔다. 나보다 약간 여성만 골라 일명 어깨빵을 하며 괴롭혀 왔다.

그런 행패를 방치했다. 묵인해줬다. 그래도 된다 말하는 것 마냥. 결국 그는 한 여성의 삶에 생채기를 냈다.

나 역시 이런 삶의 투쟁을 이어나간다면 언제든 맞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언제든 피투성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묵인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싸우고 투쟁하며 더는 약자를 향한 혐오가 당연하게 표출되는 것을 막아 낼 것이다.

내게 하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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