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아진 걸까, 단단해지는 걸까
그냥, 요즘은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뜨겁게 살기보단 그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직한 회사에 결국 3개월 만에 퇴사 통보를 했다. 이번 회사에서는 명확히 내가 뭘 싫어하는지 깨달았다. ‘사람이 사람을 하대하는 것.’
스타트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 환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 또한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었다. 단 한 사람에 의해 젊은이들이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했다.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인격모독을 내뱉고, 본인이 언제나 옮다는 그 모습, 너네가 못나서 우리 회사 온 것이니, 갈 곳이 없는 사람 거둬들인 나에게 잘하라.
그 모습에 아팠고, 잠시 분노했다. 그러나, 서른한 살의 난 안다. 내가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봤자, 결국 바뀌는 것 없이 모든 화살은 내게 꽂힐 것이다. 그럴 바엔 눈 질끈 감고 나가자.
그렇게 나오기로 결심했다. 프로 이직러 답게 또 이직을 했다. 지금껏 해보지 않은 산업의 홍보 담당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고작 한 달이 지났을까. 경력에 비해 많은 회사를 거쳐 온 나는 이 회사의 문제를 금방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풀어봤던 문제. 그러나 항상 오답을 제출해 결국 내가 떨어져 나갔던 문제들. 이번에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짝꿍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짝꿍은 답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말해.”
“아니, 말해봤자 회사는 변하지 않아. 나만 부서질 뿐.”
“그럼 어떻게 하게? 끙끙거리게?”
“아니... 어른스럽게, 다른 어른들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어떻게 해결해왔는지 배워야지.”
그리고 가만히, 묵묵히 내게 쏟아지는 일폭탄을 처리하며 효율적이지 않은 의사소통 체계에 대해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무작정 사이 안 좋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당신들 의견이 다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결과물을 낼 수 있냐! 어서 의견을 합치해서 알려 줘라!”
해야 하나...? 그러나 이 방법은 언제나처럼 ‘이상한 얘’ 취급받기 너무나 좋다는 걸 안다. 이런 방법을 쓸 만큼 신뢰를 쌓지 못했다는 것도.
최선을 다해 모두의 의견을 정리했고, 전달했다. 엄청난 품이 들어가지만, 그게 모두를 안 거슬리고 해결하는 문제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방법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입사하기 전 2달간 표류하던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진전을 하고 있으니.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회사에 신입이 입사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그러나 경력은 없는.
그는 신선했다. 회사 생활이 처음이라는 것도, 초면에 “몇 살?”이라고 묻는 것도.
악의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에 대한 편견보다는 신박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회사 방침상 연봉 테이블에 학력이 반영된다. 그는 고졸이라 그에 맞는 연봉이 책정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보는 이들 마다 “석사예요? 학사예요?”, “어디 대학 나왔어요?”를 묻고 다닌다. 당연히 그런 행동은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의 맑음에, 정말 몰라서 하는 것 같은 행동에 그건 적절치 않다는 걸 알려 줄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입을 닫기로 했다. 내가 하는 고나리질이 그의 맑음을 해치는 건 아닐까?라는 마음 반, 괜히 나중에 내가 갑질했다고 이야기를 듣는 건 아닐까?라는 마음 반.
예전의 나라면? 당장 일러줬겠지? 그런 태도는 적절치 않다고, 말이 나올 수 있다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알려주는 게 맞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거다.
그러다 문득 ‘이제 내가 눈 감는 법을 배운 걸까? 단단해진 걸까?’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에 우스갯소리로 ‘지금의 전 패기가 없네요.’라고 말하자 그는 ‘이젠, 지킬 게 많아진 거겠죠.’라고 답했다.
지킬 게 많아진다는 건 겁이 많아진다는 거라 생각했는데. 난 겁이 많아진 걸까?
보통의 어른이 돼버린 걸까. 그렇다면 보통의 어른은 나쁜 걸까?
삶을 돌아보며 살자, 부끄럽지 않게 살자 그렇게 외쳤던 지난날. 그 약속을 지키는 걸까, 깨버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