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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Oct 23. 2018

바보 같은 그녈 가엾게 여겨주세요.

영화 [이민자] 후기│마리옹 꼬아르, 호아킨 피닉스 출연

1920년대 미국,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얄팍한 남자에 속아 성매매로 돈을 벌 수밖에 없었던 가엾은 여자가 있었다. 




영화 정보



제목: 이민자 / Lowlife, The Immigrant, 2013

장르: 드라마 / 멜로 / 스릴러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호아킨 피닉스 외

감독: 제임스 그레이

개봉: 2015년 09월 03일(한국)
평점: 8.16점 / 10점

요약: 

너무 충격받아서 영화에 대해 뭐부터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돈을 많이 벌고 전쟁 걱정 없이 살 수 있단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폴란드에 살던 여주인공 '에바(마리옹 꼬띠아르)'도 미국으로 가게 되는데..., 이민자로써 성 착취를 비롯한 처절한 농간을 당하고 만다. 동생을 위해 꿋꿋이 견뎌내는 '에바'가 바보 같다. (보면서 내내 마음이 아팠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인 1920년대. 지금부터 약 100년 전 이야기이다. 실화는 아니지만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프 삼아 제작된 영화이며,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의 표정과 말투로 만든 감정연기가 훌륭하다. 시대극을 보며 '아메리칸드림'이라 불렸던 당시의 미국의 사회 풍경을 느껴볼 수 있다.




영화 후기
'에바'를 노리는 '브루노'


바보 같은 에바... 에바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폴란드에서 출발한 그녀는 배 안에서 그녀의 여동생과 함께 성범죄를 당하고 만다. 분명히 에바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미국에 거주했던 에바의 친척은 그 사실을 듣고 '체면'을 위해 에바와 그녀의 여동생 입국을 거절한다. 영화에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미국에 도착한 후 살아가려고 이민 오는 배 안에서 자신의 몸을 매매한 것일 수도 있다. 

살아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에바 스스로 '원했냐', '원치 않았냐'이다. 하지만 둘 다 에바가 손가락질 당할 일은 아니다. 분명 자신은,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성관계가 꼭 여자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에바가 어떤 판단을 했든 본인의 선택일 뿐. 타인이 비난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에바가 원치 않았는데, 남자들에 의해 성범죄를 당한 직후부터 자신의 성을 사용하며 돈을 벌었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에바를 욕할 자격은 없다. 


도착해서부터 여동생은 입국심사에서 '폐렴'으로 입국 사무소의 기관으로 격리되고 혼자 남은 에바는 친척에게도 불청객이 되며 또 한 번 자신의 몸으로 돈을 벌게 된다. 아니, 어찌 보면 에바는 속아서 그렇게 된다. 에바의 아름다움에 반한 '쇼 또는 서커스 호스트' 브루노(호아킨 피닉스)에 의해 남자들이 가득한 술집에서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성적으로 조롱당하며 버텨낸다.  

분명 '브루노'는 '에바'에게 반했는데, 왜 에바를 다른 남자들에게 돈을 받고 맡기는지 이해할 수 없고, 어찌 되었던 에바 본인이 선택했다면 그로 인해 번 돈은 에바 것일 텐데, 그 반절을 브루노가 가로채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에바를 타락시키는 브루노가 원망스럽다.





사람이 상처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얽혀 살고 있지만, 사람은 크게 두 분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에바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은 모두 상처만 남긴다. 안 그래도 동생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에바에게 '성매매'를 알선하는 브루노도 모자라서 서커스에서 마술을 하는 올란도(제레미 레너)까지 착해빠진 에바를 혼란스럽게 한다.


바보 같은 에바, 두 남자에게 속고 두 남자가 저지른 상황에 말려 자신도 도망가는 처지가 되고 망가지는 단계를 밟는다. 한 여자의 인생을 두 남자가 망쳐버리는 장면이 거듭 등장한다.


에바는 어떤 사람을 믿어야 할까? 아니면 아예 누구도 믿지 못해야 할까? 정말 딜레마는 에바는 입국 사무소에서 격리된 동생을 꺼내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싫을 때 있지만 결국, 사람이 있어야 산다. 사람이 상처가 되더라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에바도 마찬가지, 브루노든, 올란도이든 누구든 에바는 동생을 위한 게 우선이었다.





인생은 아이러니함의 연속.


결국 에바를 어려움에서 구해내는 건, 에바를 가장 파멸시켰던 '브루노'였다. 참 인생 아이러니하지. 결국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에바는 결국 '브루노'의 도움을 받아 동생을 구해내고, 브루노의 목숨 값으로 도망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아메리칸드림'이라며 모두가 찬사했던 1920년대 미국의 그때 그 시절. 그 시절마저도 이런 암흑의 일면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상엔 '빛'만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도 '행복'만 존재하지 않는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이 가장 부자였던 그때도 이렇게 가엾게 희생된 한 여자가 있었다. 


실제 존재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지만, 알지도 못하는 그녀를 많은 사람들이 가엾게 여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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